제주처럼 감귤을 생산하는 지역
<29> 나불(Nabul)
11월이 되면 튀니지에서는 감귤의 계절이 시작된다. 이 무렵부터 거리에서는 리어카에 감귤을 한가득 싣고 귤을 파는 노점상들을 볼 수 있다. <편집자주>
▲첫 출근길에 조우한 감귤
지난 2014년 11월 1일, 나는 두 달간의 아랍인 가정에서의 홈스테이를 마치고 첫 출근에 나섰다. 튀니지의 모든 행정기관은 오전 8시부터 업무를 시작하기 때문에 나는 교통 혼잡을 감안해 새벽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처음으로 나 혼자 튀니지의 거리로 나섰는데 집에서 나오자마자 처음 만난 것이 감귤을 파는 노점상이었다. 그때 감귤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지의 나라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처음 혼자 거리에 나온 날 아침에 마주친 것이 내 고향 제주도의 명산물인 감귤이었으니 눈물이 안 나온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감귤을 보자마자 제주도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그 날 저녁, 필요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모노프리(대형 마트)에 갔을 때에 나는 또 한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곳에는 고향에서 먹던 사과와 배, 감귤 등 겨울철 과일이 즐비해 있었기 때문이다.
과일만 아니라 오이, 토마토, 포도, 딸기, 채소, 무, 양파, 마늘, 가지 등도 다 있고 그 모양도 똑같았다. 너무 신기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제주도에 있는 아내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튀니지에도 한국과 모양이 똑같은 과일들과 야채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하고 말이다. 수화기 너머로 아내도 신기해했다.
▲위도와 같아 기후, 농작물 비슷
알고 보니 튀니지는 표준시를 정하는 경도는 우리나라와 다르지만, 지역의 기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위도는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우리나라는 중위도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가 대체로 온화하고 사계절이 뚜렷하다. 우리나라와 위도가 비슷한 국가들을 찾아보니 이탈리아, 튀니지, 모르코, 알제리, 중국, 일본 등이 있었다.
때문에 튀니지도 지역에 따라서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생활하다 보니 이 나라에도 동양적인 유교문화가 있나 착각될 정도로 국민성도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어른을 공경하며 친절함이 몸에 베인 국민들이다. 이러한 국민성도 위도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튀니지에서 감귤은 모두 ‘나불(Nabul)’이라는 지방도시에서만 생산된다. 제주도와 기후가 비슷한 감귤의 도시 나불에 가고 싶었지만 사실 튀니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IS로부터 사주 받은 테러가 2번 발생한 후로는 혼자 지방 여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는 날 헬스클럽에서 알게 된 튀니지인 여대생이 나불과 하마멧을 안내해주겠다고 해서 일정을 잡아서 나불로 출발했다. 그 여대생도 한국문화를 아주 좋아하고 있어서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그 여대생은 나에게 아랍어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한국의 이천과 닮은 공예도시
튀니스에서 나불이나 함마멧으로 가려면 ‘뱁 알리우와’에 있는 남부터미널에서 버스나 르와지를 타야 한다. 르와지를 타고 나불로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니 1시간 만에 나불에 도착했다. 르와지 터미널은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터미널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시내 중심가로 들어서는데 로터리에 감귤을 상징하는 대형 상징물이 서있다. 안내를 해주는 튀니지 친구가 그 탑은 도자기로 구워 낸 것이라고 했다.
나불은 감귤로도 유명하지만 도자기로도 아주 유명하다. 여러 지방을 여행할 때마다 도자기를 파는 상인들이 나불에서 만든 도자기라고 강조해서 나도 기억을 한다 그래서 나불이 도자기로도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같이 온 여대생이 나불하면 감귤과 도자기의 도시로 유명해서 많은 유럽인들이 이곳까지 와서 도자기를 구입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5분 정도 더 걸어서 가니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공예센터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많은 공예가들이 도자기를 직접 빚고 있었다. 한국민속촌처럼 관광객들을 위해 제작과정을 보여주면서 도자기를 파는 것이다. 도자기에 문양을 그리고 채색하는 능숙한 손놀림은 신기할 정도로 정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자기에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데 나불에서는 초벌을 구운 후에 일일이 손으로 색을 입히는 채색 도자기다. 이곳은 도자기만아니라 유리 세공단지로도 유명하다. 유리를 세공하는 한 작업장에 들어갔더니 불로 유리를 다듬고 있던 할아버지가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유리를 인두로 세공하고 있어서 용도를 물어봤더니 향수병이라고 한다. 비취색에서 품어 나오는 신비로움에 얼마냐고 물어 봤더니 8나르(4800원)이라고 한다. 5개를 살 테니 한 개에 5디나를(3000원) 주라고 했더니 망설이다가 갖고 가라고 한다. 튀니스에 돌아간 후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산 향수병은 진짜 유리세공품이었으며 튀니스 중심가에서는 아주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씨가 들어있는 밀감
그곳에서 나와 시내 중심가를 20분 정도 더 들어가니 전통시장이 나왔다. 전통시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감귤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 팔고 있었고, 감귤류는 다양했다. 오렌지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발렌시아 오렌지, 꼭지 아래쪽이 배꼽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네이블(배꼽)오렌지, 한국에서는 구경도 못해본 붉은색의 과육을 가지고 있는 블러드 오렌지와 자몽까지. 제주의 대표적인 밀감인 온주밀감도 이곳에 있어서 먹어보았는데 씨가 들어 있었다.
1970년대에 내가 먹어본 씨 있는 밀감 맛과 똑 같다. 발렌시아 오렌지 2kg, 네이블오렌지 2kg를 샀는데 4디나르(2400원)라 한다, 팔면서도 나에게 왜 많이 사느냐는 눈치이다. 감귤 값이 정말 싸다. 튀니지에서는 채소나 과일을 재배할 때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를 같이 온 여대생에게 들어보니 튀니지 농부들은 농약을 사용하면서 농작물을 재배할 정도로 자금이 여유롭지가 않다고 웃으면서 애기를 해주는데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가 없어서 웃어 넘겼다.
그러고 보니 모노프리에서 파는 야채들을 보면 잎에 벌레가 갈아먹은 흔적들이 있는 그대로 판매가 된다. 한국에서는 상품으로 나올 수 없는 야채들이 판매되는 것을 보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기도 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로마시대의 제조법으로 만든다고 하는 채색도자기를 길가에 잔뜩 펼쳐 놓고 팔고 있었다. 나불은 튀니지 북동부에 있는 해안 마을이다. 2000년전 로마가 이곳을 지배하면서 도자기 도시로 번성했다.
로마시대에 나불을 네아폴리스(Neapolis)라고 불렀다. 네오(neo)는 새롭다는 뜻이고, 폴리스(polis)는 그리스어의 고대도시 국가를 의미하는 말로서 새로 개발된 신흥 도시를 말한다.
전통시장을 나와서 튀니지 제 2의 휴양도시 함마멧으로 가기 위해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안내해주던 여대생이 사람 2명이 탄 택시를 타라고 한다. 내가 “사람이 타 있잖아?”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걱정마! 합승택시야!” 라고 대답했다. 합승택시는 나불에서 함마멧까지 나오는 요금을 정원만큼 나눈 요금만 내면 된다고 하니 버스나 르와지보다 저렴한 셈이다. 튀니지 수도에서는 합승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지방마다 다르지만 튀니지 지방에서는 합승택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고병률 제주도작은도서관협회 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