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퇴적층 시추’ 한라산 연구의 시작점
4년 계획 ‘한라산 학술조사’ 착수
한라산 가치 걸맞은 콘텐츠 기대
한라산 백록담에는 우리 선인들의 기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옛날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슴을 쏘려 하다가 잘못하여 활 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리고 말았다. 이에 옥황상제는 한라산이 높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화를 내며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서 던졌는데, 그것이 지금의 산방산이고, 봉우리가 뽑힌 자국은 움푹 패어져 백록담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저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산방산의 규모가 백록담의 크기와 비슷하다고 하니 옛 제주사람들의 상상력의 크기를 가늠케 한다.
제주를 대표하는 한라산은 대한민국 천연기념물을 넘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가치가 인정된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한라산을 그리 잘 알고 있지 않다. 그동안 여러 학자들의 연구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육지로부터 떨어진 섬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한라산의 지리적 조건은 조사연구에 많은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도 내 책임 있는 연구기관에 의한 지속적인 조사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그동안의 사회적 요구와 학계의 관심의 결실이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에서 추진하는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기초학술조사’ 연구 사업이다. 본 연구는 문화재청 지원을 받아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에 걸쳐 약 92㎢의 달하는 한라산천연보호구역을 4등분해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주요 연구내용은 한라산천연보호구역에 대한 항공라이다측량 실시로 침식량 및 원인 파악, 지형·지질형성 연구 및 생성연대 측정, 동식물 분포특성, 장기 기후변화 조사 등이다. 특히 항공라이다 측량은 한라산의 지형적 특징을 수치화된 자료로 구축함으로써 향후 한라산 침식변형을 장기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연대측정 연구는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한라산 화산 분출시기를 새롭게 밝혀내게 된다.
이러한 한라산에 관한 전반적 연구 시도는 지난 9월초 기초학술조사의 일환으로 추진된 백록담 퇴적층 시추작업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백록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산정호수로, 분화구 내부에는 분화구 내부 사면으로부터 이동된 물질과 분화구 외부에서 바람에 날려 들어온 물질 혹은 백록담 주변 화산활동에 의한 화산재 등이 차곡차곡 쌓일 수 있는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춘 곳이다.
백록담 퇴적층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해석 시도는 제주도에 있어 과거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들의 수직이동 기록, 기온·강수량 등의 변화, 과거 황사 기록, 한라산 화산활동사 등을 밝힐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급변하는 미래 제주도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백록담 퇴적층의 가장 아랫부분의 퇴적연대는 백록담 분화구 형성 이후 퇴적물 퇴적시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백록담 주변 암석들의 연대, 화산분출 순서 등과 함께 백록담 형성연대를 추정하는 하나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연구들의 의미 있는 연구결과는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보고될 것이다. 의미 있는 연구결과 도출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 투입, 새로운 분석기법 적용, 기존 자료와의 비교분석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당연히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기초학술조사는 한라산 연구의 시작점이다. 이번 기초학술조사를 계기로 앞으로 보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한라산을 조사연구가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이 향후 한라산에 대한 장기적 보존과 활용방안 마련을 위한 소중한 기초 자료로 활용됨은 물론 천연기념물이자 세계자연유산인 한라산의 가치 향상과 그 명성에 걸맞은 콘텐츠로 거듭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