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목마른 제주사회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근자에 도내 언론지상에 ‘공론화’라는 단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도정의 일방통행식 사업 추진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제주도가 사전 논의와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이기로 여러 사업을 추진하면서 도민사회에 논란과 갈등이 일고 있다. 공공사업의 경우 입안 단계에서부터 반대의견 경청 등 사업 추진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공론화 논쟁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민의(民意)의 전당에서는 도정의 사업과 정책 추진 과정을 놓고 의원들의 날선 추궁이 이어졌다. 지난 1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제주도의회 임시회 업무보고에서는 ‘공론화 없는 사업’에 의원들의 질타가 집중됐다.
행정자치위원회 이상봉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노형동에서 시범 실시하는 공유주차제를 문제 삼았다. 그는 “공유주차제는 도민의견을 수렴해야 할 사안인데 당국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노형동에서 추진되는 정책을 노형주민도 모르고, 지역구 의원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유주차제는 아파트 등 건축물부설주차장 등을 일반인이 일정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제도가 성과를 내려면 주민 공감대 형성이 필수인데 이를 위한 공론화 과정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17년 만에 부활이 추진되는 제주섬문화축제도 같은 비판에 직면했다. 문화관광스포츠위원회 김동욱 의원은 “제주도가 섬문화축제를 2018년에 다시 열겠다고 발표해 놓고선 도민 공론화를 거치겠다고 하고 있다”면서 “과정이 거꾸로 된 것”이라고 성토했다.
요즘 도민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시 시민복지타운 내 행복주택을 포함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사업 역시 그 배경에는 사업 타당성과 함께 공론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제주도가 추진하려는 굵직한 사업마다 ‘공론화’라는 문턱에 걸리는 모양새다. 원희룡 지사는 ‘도민 중심의 수평적 협치’를 도정방침으로 제시했다. 협치는 소통을 전제로 한다. 또 공론화와 소통은 불가분의 관계다. 협치를 방침으로 내건 도정이 공론화 부재라는 공격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도정철학이 확고하지 않은 탓이다. 도정의 사업 추진 방식을 보면 협치는 겉으로 내세우는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元지사의 임기가 반환점을 돈 시점에 도정이 각종 정책사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년간의 도정 운영을 토대로 정책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재선을 염두에 둔 치적 쌓기로도 보인다. 그러나 과거의 ‘일방통행’ 정책 결정 방식이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도민과의 공감대 없이 불쑥 정책을 꺼내고, 여론이 좋지 않으면 뒤늦게 공론화하겠다고 나서는 현상이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첫 단계부터 신뢰를 잃은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리 없다. 도민사회의 에너지와 행정력만 낭비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도정이 정책 결정 시 공론화를 생략하는 것은 “나를 따르라”는 의식의 발로다. 제왕적 도지사의 행태다.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소통의 시대다. 국민들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소통 능력’을 중시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015년 8월 ‘차기 대통령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어느 동물 유형을 가장 선호하는가?’라는 주제로 설문한 결과, ‘소통에 능한 고래’형이 30.8%로 1위로 꼽혔다.
‘소통’이 화두인 시대에는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책 추진에 있어 도민과의 소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독선과 불통으로는 좋은 결과를 만들기가 힘들다.
도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경청과 소통은 공직자가 가져야 할 기본 자세다. 소통을 바탕으로 한 정책은 도민들의 공감 속에 그 효과 또한 극대화된다.
동의보감에 ‘통즉불통(痛卽不通), 불통즉통(不痛卽通)’이라는 말이 나온다. “막힌 곳을 통하게 하면 통증이 없어지고, 막혀서 통하지 아니하면 통증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는 비단 사람의 육체 건강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사회에도 소통이 되지 않아 아픈 일이 많다. 제주사회도 그렇다. 원희룡 지사와 도정의 고위 당국자들은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