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대구·서울은 되는데 제주시는 왜?"

'잘못된 행정' 중앙사거리 횡단보도 철거
<하> 다른 지역의 사례

2016-09-07     고상현 기자

타 시·도 역시 오래된 민원
수차례 조정과정 통해 합의
'상인 핑계" 제주시와 대조

“많이 불편하다.”

제주시 원도심 중앙사거리 시청 방향 구간에 지하상가 보수 공사로 설치됐던 임시 횡단보도가 공사 종료 후 지난달 31일 철거된 뒤에 기자가 만난 장애인, 노약자 등 보행 약자와 시민들이 공통으로 쏟아낸 말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이곳에 횡단보도가 설치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제주시는 상가 이용 유동인구 감소로 인한 매출 감소를 우려하는 지하상가 상인들의 눈치를 보며 수년째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 동인천 인권위 진정 성공

지난해 5월 17일 인천광역시 중구 경인전철 동인천역 인근에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이곳은 2000년부터 주민들이 도로를 횡단하려면 먼 거리를 우회하거나 지하도상가를 통해 가야 해서 수차례 횡단보도를 설치해달라고 민원을 내던 곳이었다. 하지만 행정과 경찰은 인근 지하도상가 상인들의 반대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10년 넘게 ‘제자리걸음’ 상태였다.

상황은 2013년 12월 한 주민이 ‘횡단보도를 설치해 달라’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면서 달라졌다. 인권위는 “보행 약자가 길을 건너는 데 너무 오래 걸려 이동권이 제한된다”며 경찰에 교통안전시설심의위원회를 열 것을 권고했다. 이후 심의위원들은 현장조사를 거친 뒤 횡단보도 설치안을 통과시켰고, 인천시는 횡단보도를 설치했다. 이는 상인들의 상권보다 교통약자의 보행권을 우선한 결정이라서 눈길을 끈다.

당시 심의위원이었던 라성환 인천지방경찰청 교통계장은 본지와 한 통화에서 “최근 교통 정책의 흐름이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안전한 보행권을 먼저 보장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인천에서도 이 흐름에 따라 횡단보도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어 횡단보도 설치 이후 주민과 상인의 반응에 대해 “오랜 시간 불편을 겪었던 주민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우려했던 매출 감소로 힘들어하는 상인들도 없다”고 했다.

 

▲ 대구·서울 적극 중재 성사

2013년 3월 대구시 중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 보행 주민들이 수년째 바라던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이곳도 인근 지하상가 상인들의 반발로 횡단보도 설치에 차질을 빚었었다. 이에 대구시는 수차례 상인․시민과 합의 조정을 진행해 지하상가 승강기 설치와 함께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선에서 합의를 끌어냈다. 제주시가 중앙사거리 횡단보도 설치와 관련해 한두 차례 정도 상인들과 만나 협의한 것과는 비교된다.

서울시 청계6가도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었다. 이곳에 보행약자의 편의를 위해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것을 두고 인근 지하상가 상인들의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전문가로 구성된 ‘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해 이해당사자들과 꾸준히 면담을 하며 합의 조정을 진행해 결국 지난해 횡단보도를 신설했다. 횡단보도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어물쩍 넘어가던 제주시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청계6가의 경우처럼 이해당사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로 갈등을 해결할 때 뜻밖에 갈등이 쉽게 풀릴 수 있다”며 “행정에서 손 놓고만 있지 말고 갈등 조정을 통해 장애인, 노약자 등 시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인들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