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뒤바뀐 제주도정의 ‘公論化 과정’
공론화(公論化)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안을 놓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말한다.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나중에야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은 ‘속이 텅 빈’ 공론화(空論化)일 뿐이다.
순서가 뒤바뀐 제주자치도의 ‘공론화 과정’은 한 둘이 아니다. 제주시 시민복지타운 내 행복주택을 포함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이나 제주세계섬문화축제 추진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두 건 모두 제주도가 미리 정책을 결정한 후 뒤늦게 의견 수렴에 나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는 도정의 한 축인 도의회를 비롯해 도민들을 기만하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임대주택 건설계획은 지난달 1일 전격 발표됐다. 원희룡 지사가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고 공언했으나 이미 국토부에 사업을 신청한 뒤였다. 도의회가 ‘공론화 과정 없는 섣부른 추진’이라며 제주도를 압박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시청사 부지에 임대주택을 짓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땅은 당초 제주시가 시청사 포화에 대비해 어렵사리 마련한 것이다. 기존 시청 주변 상인 등의 거센 반발로 시청사 이전은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이 땅을 ‘공리(公利)’를 위해 사용한다는 명분만은 뚜렸했고 지켜져 왔다.
그런데 돌연 원 지사가 이곳에 공공임대주택 건설계획을 발표하며 범도민적 논란으로 비화됐다. 물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주거복지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 꼭 시청사부지에 들어서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남아있는 땅’이라고 쉽게 접근했다면 너무 근시안적 발상이다.
앞으로 제주도심에 이 정도 규모의 부지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다. 더욱이 인구 유입 등으로 인해 도시가 점차 커지며 공공(公共)시설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4800여명의 주거복지를 위해 48만여 시민의 ‘공리’를 포기하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로 귀결될 것”이라는 비판을 이제라도 잘 새겨들어야 한다.
공론화 과정이 뒤바뀐 것은 세계섬문화축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정책 결정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필연적으로 갈등을 낳는 법이다. 도민들의 공감대 없는 관(官) 주도의 축제가 성공한 사례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정책 결정에 앞서 최소한 도의회의 의견이라도 물었어야 했다.
최근 원희룡 제주도정의 행보를 보노라면 ‘불통(不通)의 박근혜 정부’를 빼닮아 가는 것 같다. 각계의 비판과 조언에도 불구하고 ‘메아리 없는 도정(道政)’이 바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