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병 치료의 '해답' 발견
“비타민 B가 모자라면 각기병, 또 C가 모라라면…”하고 우리는 학교 다닐 때 비타민에 대하여 이렇게 학습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 잔인한 학습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5분 안에 잔인하게 처리해버린 이 지식의 안 쪽에는, 수많은 인류의 고통과 죽음과 또 극적인 돌파의 기쁨이 담겨져 있다.
그것을 알고 생각하고 기적과 같은 비타민의 위력을 느끼어 보는 일은 무미건조한 학습을 즐거운 것으로 이끌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게도 해 주었을 것이다.
과거를 알아보고 현재를 더 잘 이해하여 개선할 점을 찾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오늘은 우선 백미와 각기병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 자바섬에서의 각기병
네덜란드가 지금의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을 점령하고 있었을 때의 역사로 돌아간다.
네덜란드의 한 청년이 1883년, 23세의 젊은 군의관으로서 이곳에 와 자바 섬의 한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가 나중에 노벨상을 받은 에이크만(Eijkman)이란 사람이다.
그는 수많은 각기병 환자를 이곳에서 접하면서 완전히 좌절 속에 빠지게 되었다.
아주 미세한 세균이 병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대학에서 배우고서 막 졸업하고 여기에 온 그는 이 섬에서 이 이론과 이상스럽게 모순이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직 네덜란드 사람들의 위생조처가 취해지지 않은 두메산골 마을에는 각기병이란 것이 없는데 네덜란드 사람이 와서 하수구를 잘 정비하고 청결에 대해 상당한 주의가 기울여진 마을에는 각기병이 일 년 내내 생겨 번져가고 있었다.
에이크만은 이 문제로 걱정하고 초조해 하고 있는 판에 마침 말라리아에 걸려서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귀국 후 군대에서 제대했으나 여전히 각기병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며 미생물에 대하여 더 배워야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렇게 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고 베르린으로 가 그 유명한 세균학자 코흐(Robert Koch) 밑에서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한편 네덜란드의 유트레히트 대학에 있는 과학 위원회는 각기병에 대하여 상당히 우려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용은 극동에서 네덜란드의 개화된 식민 통치가 확대되는 곳마다, 곧 각기병이 생겨났는데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계속해서 번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위원회의 대표는 마침내 기차를 타고 베르린으로 가 유명한 세균학자 코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코흐는 다른 일들로 너무 바빠서 그 청을 들어 주지를 못하고 나 대신에 여기에 와 있는 에이크만과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에이크만은 다시 자바섬으로, 이번에는 각기병의 병원균을 찾아내는 긴급한 임무를 띤 아주 존경받는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오게 되었다.
일년이 채 안 되어 흥분케 하는 보고서가 네덜란드에 도착했다.
각기병 환자의 피 속에서 작고 둥그런 간균(bacillus)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바섬의 통치 지역에선 아주 엄격한 위생 조처가 취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이 균이 옮아오지 않도록 석탄산과 다른 소독제로 온 마을을 문지르고 씻어 내었다. 머지않아 이 무서운 병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백신도 개발될 것이리라.
그런데 성공을 기뻐하면서 다른 위원들은 네덜란드로 돌아갔으나 젊은 에이크만은 과학이 정말 승리했는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자바섬에 홀로 남았다.
선배들이 만장일치를 본 의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고통스런 일이었지만 그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에 그 작고 둥그런 간균이 이 병의 원인이라면 왜 그렇게 철저히 소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의 발병자가 새로 생겨나고 있는 것인가.
네덜란드 통치 아래 있는 원주민들은 여전히 매일 각기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네덜란드에 의해 정복되지 않은 산골 마을의 원주민들은 여전히 건강하다.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동료들이 떠난 뒤에 자바섬에 머물면서 그 위원회가 교도소 병원 부지에 마련한 자그만 연구실에서 홀로 고집스럽게 연구를 계속했다.
수고를 해서 그는 각기병 환자들의 피의 샘플을 모으고 그것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했다. 또 그는 동물을 가지고 실험을 하기로 했다.
만약에 그 둥그런 간균이 정말로 각기병을 전염시키는 힘이 있다면 그 균을 건강한 동물에 주사한다면 각기병의 증상을 나타낼 것이다.
몇몇 과학자들이 그 실험동물이 각기병에 대해 면역력을 지니기 때문에 그러한 검사로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 주장에도 불구하고 에이크만은 그렇게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용할 수 있는 실험동물이 공급이 되지 않아 그는 임시변통으로, 교도소 병원 밖의 뜰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는 닭 몇 마리를 사용하기로 했다.
간균에 대해 조금이라도 증거를 얻을 수 있으라는 생각으로 그는 이 닭들에게 간균을 주사하고 그 후 며칠간을 지켜봤다.
처음엔 이 닭들도 다른 닭들과 같이 행동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교도소 교정을 걸어가는데 그는 이상하고 부자연스런 걸음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닭들을 보았다.
사람에게서의 각기병의 첫 증상은 환자의 걸음걸이로 알 수 있다. 정상적인 걸음을 하는 대신 너무 술을 많이 마셔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흔들리며 걷는다.
그리고 곧 신경 조직이 심한 손상을 입어 그 부자연스런 움직임마저 불가능해지고 마비가 시작이 된다. 이제 닭들은 그 간균을 주사한 후 각기병의 초기의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느낀 흥분의 절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왜냐면 며칠 안에 교도소의 정원에 있는 모든 닭들이 비틀거리고 흔들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사를 맞은 닭뿐만 아니라 모든 닭들이다. 그래서 이것은 그저 우연한 일이거니 생각하고 다시 혈액의 샘플과 그것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일로 돌아갔으나 이 닭들에 대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매일 연구실을 오가며 그는 이 닭들이 회복되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닭들의 걸음걸이는 정상으로 돌아갔고 어떤 질병의 증상도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이들 닭들은 각기병으로 여겨지는 질병에서 회복된 것이다.
그러나 교도소 병원에서는 과학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를 하더라도 환자가 이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 거의 언제나 죽게 되는 것이었다.
■ 백미와 각기병
그는 비틀거리던 닭들과 병원의 환자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현미경을 한 쪽으로 밀어 놓고서는 왜 이 닭들이 나았는가를 알아내는데 모든 노력을 바치기로 했다.
그 답은 거의 웃기다시피 쉽게 주어졌다. 교도소 부엌에서의 짧은 대화가 그에게 그 답을 주었다.
몇 십 년 전에 주어졌다면 수십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그 답이다. “뜰에 있는 닭들에게 주는 모의를 혹시 최근에 바꾼 적이 있습니까?”하고 에이크만은 교도소의 요리사에게 물었다.
요리사는 창피스러운 듯한 모습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닭들은 다시 값이 싼 현미만을 먹고 있습니다. 저 현미가 몇 달 전까지 닭들이 항상 먹어 온 것입니다. 닭들에게 줄 특별한 사료를 주문하지 않은 것이 좋을 듯 여겨져서 한동안 닭들은 네덜란드에서 죄수들에게 주는 백미를 먹였습니다. 한 몇 주 동안은 닭들은 오직 백미만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교도소의 감독관이 이 걸 알고선 그렇게 좋은 백미를 닭에게 주어선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요리사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래서 요리사는 명령을 따라서 다시 현미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