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경축사’ 유감(遺憾)
“우리는 ‘위대한 大韓國人’
힘을 합쳐 미래로 나아가자”
대통령 말, 공허하게 다가와
이번에도 ‘자기반성 없이 남 탓’
‘대통합’ 내건 사면 ‘강정’은 제외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없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우리 모두 위대한 ‘대한국인(大韓國人)’임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힘을 합쳐 희망찬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고 힘주어 강조했다.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광복의 역사를 만들고, 오늘날의 번영을 이룬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식민통치 36년의 고통과 설움의 긴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것. 안중근·윤봉길 의사 등 애국 열사들이 죽음 앞에서도 그토록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간절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역설했다.
이제 그 혼(魂)과 얼을 이어받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함께 가는’ 공동체 의식으로 우리가 노력한다면, 한 차원 높은 도약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 박 대통령 경축사에 담긴 요지다.
말인즉슨, 옳게 여겨지고 바람직스럽긴 하지만 어딘가 공허(空虛)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경축사 또한 ‘자기반성은 없이 남 탓’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자부심과 한류문화 등을 언급하며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新造語)들이 확산되고 있다”며 이른바 ‘헬(hell) 조선’ 등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러면서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는 결코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제 다시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도전과 진취, 긍정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국민들의 생각과는 아주 딴판이다. 자기비하와 비관 등은 과연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정부는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그간 얼마나 노력했는가. 오죽했으면 ‘헬(지옥 같은) 조선’이란 말이 회자(膾炙)되는지 집권 세력이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는가.
지금 젊은이들은 ‘취업 절벽’에 갇혀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데 몇 년이 걸려 집 한 채 값이 든다는 세상이다. 교육을 ‘기회의 사다리’라고 말하나, 로스쿨이나 의전원 등은 대부분 ‘금수저’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흙수저’ 입장에서 수 천 만원에 달하는 학비 등을 조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다.
우리사회 양극화(兩極化)가 심화되는 가운데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팍팍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폭염이 아니더라도 이제 서민들은 지칠대로 지쳤다. 이런 와중에 대우조선이나 법조비리에서 보듯이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각종 불·탈법 행태는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민중은 개·돼지, 1%와 99%의 신분제는 고착화돼야 한다”는 망발(妄發)로 국민들의 ‘염장’을 지른 것도 교육부 고위 공직자였다. 숱한 국민적 의혹에도 불구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민정수석은 아직도 건재하다. 이러고도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不信)에 빠져있다며 국민들을 탓하고 나무랄 것인가.
제주의 ‘강정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해군기지를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평화스러웠던 강정마을은 지역공동체가 무너지는 등 쑥대밭이 됐다. 장기간의 반대운동 과정에서 주민과 활동가 등 연인원 700여명이 경찰에 연행돼 사법 처리됐다. 이들에게 부과된 벌금만도 모두 3억8000만원에 달한다. ‘돈 폭탄’으로 주민들에게 족쇄(足鎖)를 채운 꼴이다.
해군기지가 안보차원에서 정녕 필요했다면 법만 앞세울 게 아니라 주민들을 설득하는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해군 등 정부는 불통(不通)으로 일관하며 사태를 악화시켜 왔다.
그동안 제주도와 도의회, 국회의원 등 각계각층 인사들은 특별사면 대상에 강정주민들을 포함시켜 줄 것을 수차례 건의했다. 이제 더 이상의 대립은 풀고 민군(民軍)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충정의 발로였다.
그러나 ‘국민 대통합’을 내건 이번 광복절 사면에서도 ‘강정’은 제외됐다. 600억원대 횡령·배임 등을 일삼은 재벌(財閥) 회장에 대해선 경제 활성화란 명목으로 특별사면 및 복권조치까지 시킨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모두가 ‘남 탓’을 하며 자신의 기득권만 지키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가 공멸(共滅)의 나락으로 함께 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내려 놓을 것이 없는 국민들로선 가슴이 답답하고 억장이 무너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