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청사 부지’와 亂개발

2016-08-08     김계춘

도심 활성화 내세운 塔洞 매립
결과는 수려했던 환경 파괴만
한치 앞도 못 내다본 행정 탓

“시청사 부지 임대주택 건립”
道 계획에 난개발 우려 목소리
보다 신중·냉정한 판단 필요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지만 지나고 보면 늘 후회가 뒤따른다. 먼 과거는 그렇다 치고, 지금도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은 탑동(塔洞) 매립이다.

썰물 때면 드러나던 먹돌 해안의 운치, 여름철 해질녁의 노을 풍경 등이 너무나 황홀했던 탑동바다였다. 섣부른 매립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관광패턴의 변화 속, ‘쿠바의 축복’이라는 아바나 말레콘 해변을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탑동바다는 우리의 추억(追憶) 속에만 남아 있다. 그 아름답던 먹돌 해안을 송두리째 파괴하며 내세웠던 옛 도심 활성화는 공염불이 됐다. 개발이익의 지역환수 역시 ‘병문천 복개’라는 악순환(惡循環)으로 이어졌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행정당국과 토건세력의 결탁은 개발업자들의 배만 불린 가운데 최악의 결과만 남겼다.

이 같은 옛일을 새삼 꺼낸 것은 최근 제주시 시민복지타운 내 ‘시청사 부지’ 활용방안이 지역의 ‘핫 이슈’로 등장해서다.

원희룡 지사는 지난주 일본 출장에 앞서 “시청사 부지에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주택 1200세대를 건립하겠다”는 도의 계획을 밝히며, 공론화(公論化) 과정을 앞당겨 할 뜻을 내비쳤다.

다만 “행복주택과 관련해 국토부와 협의하고 있다. 건축비용은 국비 30%, 국민주택기금 40%, 지방비 30%가 투입되는데 건축비를 제주도가 통으로 부담할 수 없어서 정부와 협의 중이고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태”라며 아직 최종 결정되지 않은 점을 애써 강조했다.

이어 원 지사는 “직장과 교통여건, 교육·문화·복지여건이 좋은 곳의 ‘금싸라기 공유지’일수록 개발차익을 남기는 게 아니라 청년과 서민에게 우선권이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디자인센터나 컨벤션센터 등의 인구유발 시설 건의가 많았으나, 공공임대주택도 도시에 미치는 효과가 이와 비슷하다는 말까지 잊지 않았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산자부 지원하에 전임(前任) 도정이 추진했던 ‘제주디자인센터’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가 디자인센터 건립 의지를 갖고 있다”는 관계자의 해명도 공언(空言)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시청사 부지 활용은 이렇게 조급히 서둘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행복주택 등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보다 신중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희룡 도정이 추진하는 일련의 상황을 보노라면 마치 뭔가에 쫓기는 듯한 모양새다. 그 저변에 혹시 제반 선거 등을 의식한 ‘성과(成果)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조짐은 ‘제주신항 개발구상’ 때 이미 나타난 바 있다. 무려 2조 4000억원이란 막대한 돈이 투입될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초대형 사업을, 제주도는 그 흔한 용역 한번 없이 단 5개월 만에 뚝딱하고 수립한 전례가 있다.

이번 시청사 부지 활용과 관련해선 벌써 온갖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불과 4년 전에도 대체사업으로 공동주택 등이 제안됐는데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며, 그 사이 무슨 상황변화가 있었느냐고 반문(反問)한다. 또 임대주택 1200여 세대가 들어서면 교통 체증과 주차난 심화는 불 보듯 뻔하다는 것. 이에 더해 교육 및 문화시설 미비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이번 계획은 인근 광장(1만9032㎡) 사유화 등에 따른 특혜(特惠) 논란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신제주와 구제주의 허리띠 역할을 하면서 도심지 내 녹지공간으로서 완충지 역할을 하는 이 부지의 상징성과 의미도 퇴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난(亂)개발을 부추기는 기존 도시개발계획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쓴소리다.

도가 임대주택을 지으려는 땅은 당초 ‘제주시청사 이전’용 부지다. 면적만 4만4000여㎡에 달한다. 원 지사의 말처럼 마지막 남아 있는 ‘금싸라기 공유지’이기도 하다. 제주도심에 또다시 이런 규모의 땅을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번 시청사 부지 활용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원희룡 지사의 임기 안에 시청사 부지를 활용하겠다는 것은 이기적 욕심일 뿐이다. 공공임대주택 건립은 명분에선 그럴싸 하지만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때로는 ‘느림’이 미학(美學)일 수도 있다. 시민들의 ‘최대 공약수’가 도출될 때까지 문제의 땅을 그대로 놔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