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시장들 초심(初心) 잃지 말기를

2016-07-27     한경훈

행정시장 취임 의욕적 행보 
구체적 정책비전 보이지 않아 
임기 후반 뒷심 부족 우려

시작 때 설렘과 긴장 유지
주민생활편의 시책 개발 주력  
지역발전 적극적 역할해야

조선 초기 권신(權臣) 한명회는 죽을 때 성종 임금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시근종태 인지상정 원신종여시(始勤終怠 人之常情 願愼終如始)-처음에는 부지런하지만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것이 사람의 성정인데, 원컨대 신중하기를 처음과 끝이 같게 하소서.”

한명회는 세조·예종·성종 3대에 걸쳐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세도가다. 예종과 성종은 그의 사위이기도 하다. 그가 말년에 한강변에 지은 ‘압구정’ 정자(亭子) 등의 문제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낙향해 죽음에 이르렀을 때 성종이 신하를 보내 “마지막으로 할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는 것이다. 청탁 사항을 얘기할 줄 알았던 성종이 다시 사람을 보내 “다른 할 말이 없느냐”고 물어도 답은 같았다고 한다.

한명회의 유언은 쉽게 말해 ‘초심(初心)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일상에서 상투적으로 얘기되지만 지키기 어려운 게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임기제 고위 공직자들이 임기 초기엔 의욕적으로 일을 하다가 뒤로 갈수록 애초의 다짐과 계획이 흐지부지되는 것이 다반사다. 어려운 만큼 ‘초심 지키기’가 공직자로서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공직자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경실 제주시장과 이중환 서귀포시장이 취임한지 한 달여가 됐다. 최근 둘 모두 읍면동 방문 등 바삐 움직이고 있다. 고 시장은 취임사에서 “제주시정에 변화와 혁신의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 시장은 “겸허한 마음으로 시민들을 위해 일하고 서귀포시의 미래 발전 틀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신임 시장들의 초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그러나 시정 발전을 위한 비전으로는 막연한 말이다. 아직 임기 초반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누구나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싶어 할 거다. 그러자면 정책이 있어야 한다. 주민 신임을 물을 일 없는 행정시장에 대한 평가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정책이 있어야 임기 후반까지 성과 목표를 가지고, 긴장하며, 뒷심도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은 초심을 유지하는 길이기도 하다.

고 시장의 경우 쓰레기와 교통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전임 시장 때도 현안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사안이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고 시장은 이에 더해 제주시 미래와 주민생활 편의를 위한 시책 개발에도 주력했으면 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른 시·군 폐지로 취약해 진 것 중 하나가 주민생활과 관련된 시책의 개발이다. 기초자치단체 시절 제주시는 클린하우스제와 차고지증명제 등을 발굴해 추진했다. 이는 전국에서 처음 시행된 제주시의 대표적인 시책이다. 하지만 행정시 체제에선 이렇다 할 시책 개발이 없었다. 권한 및 기능 약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이는 핑계일 뿐이다. 자치권·예산권이 없다고 시책 개발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의지가 없다는 게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행정시 조직의 활력을 위해서는 시책 개발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반복적·기계적 업무와 민원 등 돌출 상황 처리에만 급급해 하는 조직이 활기를 갖기는 힘들다. 직원들이 창조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신규 시책 개발 활성화를 통해 가능하다. 행정시가 스스로를 도청이 수립한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규정해 거기에 안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특별자치도 10년을 되돌아보면 도청의 주민생활 시책개발 기능은 기대 이하다. 업무 특성상 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시책 발굴은 도청보다 행정시가 적격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간 시책개발 경쟁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 시장이 그 선봉에 서야 한다.

고 시장과 이 시장은 취임 때 각오를 늘 기억해야 한다. ‘관리형’ 시장에 머물지 말고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오랜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미래비전과 발전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 성취에 매진해야 한다. 시작할 때의 설렘과 긴장을 유지하며, 임기 말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