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에 긴 풀까지, 즐겁지 않은 동네 놀이터”
[창의와 행복의 시대, 놀이터가 달라져야 한다]
<상> 단조롭고 지저분한 우리동네 놀이공간
사용 잦은 도심지 소재 불구 어린이공원 관리 엉망
도외선 ‘놀이교육’ 뜨는데 제주는 놀이시설 ‘후진’적
국가적으로 ‘창의’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제주를 비롯한 지역 교육감들은 아이들의 ‘행복’을 주요 기치로 내걸고 있다. 반면 우리 동네 놀이터들은 아직 아이들이 창의적인 활동으로 행복을 얻는데 적합하지 않다. 현황과 아이들의 목소리를 토대로 도내 어린이공원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14일 낮, 제주시 연동 탐라빌라 남쪽에 위치한 제9호 어린이공원에는 풀이 무성했다. 공원 전체 면적 중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는 공간(고무매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풀들은 성인의 무릎까지 자라있었다. 취재기자조차 벌집이나 뱀이 있지 않을까 발을 딛는 곳으로 온통 신경이 쏠렸다. 작열하는 여름 볕이 그네와 미끄럼틀을 달구고 있었고 그늘 하나 없는 놀이터에는 인적이 끊겼다.
같은 시각, 연동 조달청 북측의 제5호 어린이공원은 담배꽁초가 잔디 보도블록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벤치 주변에는 먹다 버린 음료 캔과 음식을 싸왔던 듯한 비닐봉지도 보였다. 놀이터 입구에 시민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클린하우스’가 있어서일까. 제5호 어린이공원은 출입구 주변으로 쓰레기가 더 많이 버려져있었다.
취재 기자는 이날 10곳의 제주시 어린이공원을 찾았다. 모두 연동과 노형동 등 도심지 주택가에 위치해 지역 아이들의 사용이 잦은 곳이었지만 풀이 짧게 깎인 곳은 없었다. 방문지의 상당수는 놀이터 입구 주변으로 클린하우스가 설치돼 있었다. 냄새가 났고, 통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미관을 해치고 있었다.
거의 모든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은 만날 수 없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파하기에 이른 시간인 탓도 있었지만 대지를 끓일 듯이 내리쬐는 햇빛을 당해낼 아이들은 없을 듯 했다. 특히 놀이기구 주변에는 고무매트가 깔려 여름철 무더운 햇볕을 더 뜨겁게 반사하고 있었다.
놀이터들은 관리만 안 된 것이 아니었다. 대개 그네와 복합놀이시설이라고 불리는 미끄럼틀만 무미건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입구 팻말에는 이 곳으로 올라가서 이곳으로 내려오라는 설명이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전문가들이 ‘지시적 놀이터’라고 말하는 나쁜 놀이터의 전형인 셈이다. 이런 곳은 아이들에게 호기심보다 통제를 가르친다. 이날 방문한 대부분의 놀이터에서는 한두 가지 놀이시설 외에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모래, 물, 바위, 나무 등 아무런 도구나 자연물을 찾기 어려웠다.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배려도 미비했다.
한 놀이터는 미끄럼틀의 하강 방향과 놀이터 출입구 방향을 마주보게 해놓았다. 미끄럼틀에서 가속을 받아 내려오는 아이들이 자칫 놀이터에 막 진입하려는 아이들과 부딪힐 우려가 있었다.
또, 기자가 방문한 모든 놀이터들의 출입구는 차가 지나는 이면도로와 직선으로 맞닿아 있었다. 울타리에서 한 칸을 빼 출입구를 만든 모양새다.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했다면 격앙된 상태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도로로 나가지 못 하도록 우회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어떤 곳은 관목이 어린이 키를 훌쩍 넘어 아이들이 바깥 상황을 알기 어렵게 막고 있었고, 또 다른 곳은 어린이 공원이라고 하면서도 대지 면적의 대부분을 의미 없는 잡풀과 어른들을 위한 공용의자에 할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