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했지만 창대해진 ’봉사활동’
동홍동 어르신이야기 사업 ‘성과’
학교 울타리를 넘은 감동의 물결
놀거리가 별로 없던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해주는 옛날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었다. 어두운 양초 불빛 아래 옹기종기 모여 친구들과 함께 들었던 분위기의 탓도 있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흡인력도 상당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서사구조를 갖춘 흥미로운 일대기이면서 우리에게 생생한 교훈을 남겼다.
우리 남주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해부터 동홍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과 ‘동홍동 어르신 이야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손자처럼 말벗이 되어 드림으로써 황혼기의 고독감을 덜어드리는 한편 어르신들이 살아온 인생역정을 글감으로 모아 책으로 엮어드리는 ‘프로젝트’다.
물론 이 활동의 시작은 어른들을 위한 일종의 봉사였다.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얘기하면서 여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문화체험 기회를 함께 선물해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에서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말벗 봉사를 하면서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살던 시절에서 현재까지 사회의 변화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굴곡의 역사가 있었음을 생생하게 전달받았다. 세대차이가 느껴지던 자신의 부모나 조부모를 이해하는 단초도 됐다.
그러자 지금 학생들이 보내는 학창시절의 시기가 삶을 살아가는 긴 여정 중 하나이고,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행복한 시절임을 알게 됐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 학생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준비해야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남주고 학생들은 1주일에 1회 이상 결연을 맺은 어르신들의 가정을 방문해 청소와 안마를 해드리고,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청취해 운문이나 산문 형식으로 자서전을 써 연말에 책으로 엮어 발표회를 갖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사업을 더 확대해 해당 봉사 동아리(라이프 스토리)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내 방송반과 기자단 학생까지 체험활동과 가정 방문에 동행하고 있다. 방송반 학생들은 활동영상을 촬영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연말 발표회 때 상영할 예정이며, 기자단은 활동 내용을 취재해 홍보하고 있다.
지금도 지난해 12월29일에는 동홍동 아트센터에서 1년간의 활동결과를 모아 가졌던 발표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어르신들을 주인공으로 한 시와 소설을 학생들이 발표할 때마다 어르신들은 눈물을 훔쳐내면서 자신들의 삶을 잘 표현해 준 데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해 발표장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제대로 이룬 게 없는 것만 같았던 그들의 삶이 타자의 입을 통해 묘사된 것을 듣자 볼품없던 삶에 가치와 생기가 돋아났다. 더불어 이날 동홍동복지협의체는 그동안 적극적으로 활동한 동아리 학생들에게 50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했고, 학생들은 이 장학금으로 선물을 구입해 어르신들에게 전달했다.
이 사업은 ‘우리 이러면 어떨까’하는 작은 생각으로 남주고의 한 동아리에서 단촐하게 출발,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해져’ 학생과 학교, 해당 어르신을 넘어 지역사회에까지 감동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학생들은 세대 공감을 통해 바른 인성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공부가 중심인 학교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세대를 뛰어넘는 계기를 갖는 것은 학생들로서도 쉽지 않은 경험인 것이다. 학교의 작은 동아리가 아이디어에 따라 어떻게 학교 밖으로 활동 외연을 넓혀갈 수 있는 지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앞으로도 남주고를 비롯한 많은 학교와 지역사회에 이처럼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귀한 가치를 세우고 세대 간에 소통하는 작업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참 긍정적인 움직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