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정치인'
원칙도 없고 소신도 없고 철학도 없고
뻐꾸기는 자기 둥지가 아닌 개개비(휘파람새과의 작은 새) 등 다른 새의 등지에 알을 낳는다. 개개비는 이를 모르고 알을 품어 뻐꾸기 새끼를 부화시킨다.
알을 까고 나온 뻐꾸기 새끼는 개개비 알을 둥지에서 밀어내고 개개비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로 자란다. 그러면서 날개가 여물어지면 훌쩍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흔히들 뻐꾸기를 ‘배은망덕의 새’라고 한다.
자기를 뽑아준 지역주민들의 민의를 왜곡하고 지역민들의 이름을 팔면서 제 욕심만 채우려는 국회의원 등 선거직 공직자들에게 ‘뻐꾸기 정치인’이라 부르는 연유도 여기서 출발한다.
제주에 지역구를 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을 보며 ‘뻐꾸기 정치인’을 떠올리는 것은 썩 유쾌하지가 않다. 불쾌하고 찜찜할 뿐이다.
그러나 최근 그들이 보인 행태는 영악스런 기회주의자들의 그것처럼 원칙도 없고 소신도 없었다. 정치적 철학도 찾을 수 없었다.
뇌 없는 아메바 집단처럼 아무런 뒷감당 없이 아무렇게나 처신하는 게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선거법 위반으로 공민권이 박탈된 특정 전직 도지사의 사면복권을 추진하던 탄원서 파문을 보면 그렇다.
특정인의 정치적 꼭두각시로 전락
제주국회의원들의 우근민 전지사를 위한 사면복권 탄원서는 외부에 노출되자 중단되기는 했지만 그 내용은 구토증을 일으킬 만큼 역겹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극치였다.
“도민들은 선거법을 위반한 전직도지사가 아니라 자랑스런 도지사 우근민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우근민 전지사의 사면복권은 제주도민 모두의 소망”이라 느니, “우근민 전 지사에 대한 당선 무효와 공민권 제한은 제주도민 모두의 족쇄”라느니, “우근민 전지사의 낙마에 도민들은 참담한 심정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는 등등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과 자존심을 의심케 하는 칭송과 찬사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숫제 ‘우근민 찬갗이거나 ‘우비어천가(禹飛御天歌)’로 손색이 없었다.
제주도와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스스로를 특정인의 사적(私的) 연줄의 꼭두각시로 전락시켜 공적(公的) 시민들을 절망케 하고 분노케 한다면 이는 제주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우근민, 그는 누구인가.
도지사 재직시 대낮 집무실에서 여성단체장을 성희롱했다가 전국적 망신을 당하고 제주도민을 부끄럽게 했던 장본인이다.
“내 편” “네 편” 편가르기로 도민사회와 공직사회를 갈등과 분열의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사람이 아니던가.
거기에다 선거법 위반으로 도지사직을 박탈당해 도민의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온 도민이 자랑스런 도지사로 기억하고 있으며 우전지사의 사면복권이 제주도민 모두의 소망”이라고?
지난 행적에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을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워하며 부르는 제주국회의원들의 ‘님을 위한 행진곡’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발가벗은 수치가 얼굴을 화끈 거리게 한다.
국민의 법 감정도 모르는 일탈행위
국회의원들의 선거사범에 대한 사면복권 탄원은 논리적 모순이며 그 자체가 윤리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법을 만드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입법자들이 법을 우습게 여기고 제멋대로 요리하려 든다면 누가 법을 지키고 따르려 하겠는가.
가뜩이나 우근민 전지사에 대한 사면복권 탄원은 그의 지사직 상실로 인한 잔여임기가 1년 가까이 남은 상태이기에 더욱 국민의 법 감정이나 법 의식에서 한참 벗어난 일탈행위라 할 수 있다.
특히 사면 복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국회의원들이 감내라 배내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의 특정인 사면복권 탄원은(비록 중도 취소했지만) 대통령 고유권한에 대한 간섭이며 스스로 입법권을 훼손시키는 건방진 정치놀음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변칙과 반칙을 통해 원칙을 밀어내려는 매우 불순하고 위험한 탈법적 발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의 빗나간 우 전지사에 대한 사면복권 탄원 추진은 또 한번 전국적인 웃음거리가 될 뻔 했다.
“국회의원이 오죽 할 일이 없었으면 전직 지사의 정치적 사면복권에 어깨동무하고 발맞추어 나가겠는갚라는 비아냥과 함께.
제주도민들은 배은망덕한 ‘뻐꾸기 정치인’보다는 원칙과 소신에 갈기를 세울 줄 아는 당당한 정치인이 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