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됐어도 더욱 그립네요"
<제61회 현충일> 안덕면 충혼묘지서 만난 사람들
6일 현충일 맞아 충혼묘지 발길 이어져
저마다 사연 남긴 채 먼저 간 이들 ‘추념’
“보고 싶은 아버지….”
6일 오전 7시께 서귀포시 안덕면 충혼묘지. 61번째 현충일을 맞아 아침 일찍부터 많은 추모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김모(71)씨도 아내와 함께 아버지 묘소를 찾아 제사 음식을 차리며 연신 이렇게 읊조렸다. 김씨는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린 뒤 아내와 함께 아버지 묘에 향을 올리고 절을 했다.
잠시 뒤 김씨가 나직이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가 5살 때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그해 돌아가셨어.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어. 크면서 아버지가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고,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했지. 그런데 그런 아버지를 몇 장 안 되는 사진으로밖에 추억을 못 해….”
이곳 충혼묘지에는 김씨의 아버지처럼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106명의 장병이 묻혀있다. 이날 묘지에 난 잡초를 부지런히 뽑아내던 박경옥(91·여)씨도 남편이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남편이 결혼한 지 5년째 되던 해 3살배기 아들을 놔두고는 전쟁에 참가했어. 원래는 남편이 3대 독자에 몸이 약해서 군인이 될 수 없었는데, 4·3사건 당시 ‘산사람’(무장대)으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혈서를 쓰고는 입대해버렸어. 그 위험하다는 돌격부대에 자원하고는 열흘 있다가 전사했지.”
박씨는 한참 동안 먼 산을 바라봤다. 이때 까마귀 한 마리가 박씨 곁으로 날아왔다. 이를 지켜보던 박씨는 “남편 없이 70년을 살았어. 하나 남은 아들을 보리, 조 농사지으며 키워냈지. 아흔 넘으면 까마귀가 뭐 주워 먹으려고 손에 앉는다던데, 나도 이제 눈도 어둡고 몸도 아프고 남편 곁으로 갈 때가 됐지”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도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행사를 기다리던 참전용사 성대백(87)씨는 대학생이던 21살 때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고 했다.
“사격훈련도 없이 한 달 훈련 받고 바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어. 그 이후로 정신없이 싸웠지. 북한군에게 빼앗겼던 서울도 다시 찾기도 하고. 그 공로로 대통령한테 훈장도 받았지.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오니깐 많은 친구들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 했더라고…. 전쟁이란 게 무엇인지…. 떠난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어….”
오전 10시가 되자 추념식이 시작됐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참석자들이 헌시를 낭송했다.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도 내 나라 내 땅을 온몸으로 지켜낸 당신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무궁화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