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됐어도 더욱 그립네요"

<제61회 현충일> 안덕면 충혼묘지서 만난 사람들
6일 현충일 맞아 충혼묘지 발길 이어져
저마다 사연 남긴 채 먼저 간 이들 ‘추념’

2016-06-06     고상현 기자

“보고 싶은 아버지….”

6일 오전 7시께 서귀포시 안덕면 충혼묘지. 61번째 현충일을 맞아 아침 일찍부터 많은 추모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김모(71)씨도 아내와 함께 아버지 묘소를 찾아 제사 음식을 차리며 연신 이렇게 읊조렸다. 김씨는 정성스럽게 제사상을 차린 뒤 아내와 함께 아버지 묘에 향을 올리고 절을 했다.

잠시 뒤 김씨가 나직이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가 5살 때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그해 돌아가셨어.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어. 크면서 아버지가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고,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했지. 그런데 그런 아버지를 몇 장 안 되는 사진으로밖에 추억을 못 해….”

이곳 충혼묘지에는 김씨의 아버지처럼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106명의 장병이 묻혀있다. 이날 묘지에 난 잡초를 부지런히 뽑아내던 박경옥(91·여)씨도 남편이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남편이 결혼한 지 5년째 되던 해 3살배기 아들을 놔두고는 전쟁에 참가했어. 원래는 남편이 3대 독자에 몸이 약해서 군인이 될 수 없었는데, 4·3사건 당시 ‘산사람’(무장대)으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혈서를 쓰고는 입대해버렸어. 그 위험하다는 돌격부대에 자원하고는 열흘 있다가 전사했지.”

박씨는 한참 동안 먼 산을 바라봤다. 이때 까마귀 한 마리가 박씨 곁으로 날아왔다. 이를 지켜보던 박씨는 “남편 없이 70년을 살았어. 하나 남은 아들을 보리, 조 농사지으며 키워냈지. 아흔 넘으면 까마귀가 뭐 주워 먹으려고 손에 앉는다던데, 나도 이제 눈도 어둡고 몸도 아프고 남편 곁으로 갈 때가 됐지”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도 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행사를 기다리던 참전용사 성대백(87)씨는 대학생이던 21살 때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고 했다.

“사격훈련도 없이 한 달 훈련 받고 바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어. 그 이후로 정신없이 싸웠지. 북한군에게 빼앗겼던 서울도 다시 찾기도 하고. 그 공로로 대통령한테 훈장도 받았지.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오니깐 많은 친구들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 했더라고…. 전쟁이란 게 무엇인지…. 떠난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어….”

오전 10시가 되자 추념식이 시작됐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참석자들이 헌시를 낭송했다.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도 내 나라 내 땅을 온몸으로 지켜낸 당신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무궁화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