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지켜주자”
놀고 싶어도 친구도 공간도 부족
진정 필요한 건 주의력 아닌 놀이
우리가 현재 접하는 정보들은 사실상 ‘역사’다. 이미 우리에게 전달되는 순간 과거 이야기란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학생들이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을 정보들을 습득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고 많은 지식들은 손 안(스마트폰)에 존재한다.
그동안 학교교육이 학생들을 일정한 틀 속에 가둬 놓고 획일적인 지식 전달에만 애써온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본다. 개성이 모두 다른 아이들을 단순하게 만드는 교육, 일방적으로 전달해 주는 죽은 지식, 그것을 암기해서 평가받도록 하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닌지 후회도 되고 새로운 각오도 되새겨 본다.
“어릴 때 잘 놀아야 잘 자란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쉬는 시간에 하는 놀이가 전부이며 그것마저 잘 몰라서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교가 파하면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학원에 가기 때문에 놀고 싶어도 놀 친구도 공간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생활이 힘들었지만 놀이만큼은 다양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돌 많은 운동장에 검정 고무신을 신은 채로 축구를 한답시고 작은 고무공을 쫓아다니다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툭툭 털고 일어서면 그만이었다. 자치기·사방치기·오징어다리·개뼈다귀·비석치기·구슬치기·딱지치기·가위 바위 보로 아카시아 잎 먼저 떼기, 말타기·삼팔선놀이·땅따먹기·제기차기, 팽이치기 등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하교 후에도 동네 한길이나 공터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총빵·곱을락·동개망개 등으로 재미있게 놀았다.
여름이면 냇가에나 바다에서 배고프면 인근 밭에서 고구마를 한·두개 파먹거나 과일 서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어두워져서야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혼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당시엔 공부는 학교공부가 다였고 나머지는 주로 놀이로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공부 못해서 못사는 친구들은 한명도 없다.
그리고 당시엔 요즘 말하는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등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요즘엔 적지 않다. 놀 수 없고 움직이지 못해 고통 받는 아이들의 답답한 내면은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즉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지적하는 부모와 교사들로 인해 아이들이 속으로 멍들고 있을 수도 있다. 말하기·듣기·읽기·쓰기·셈하기 등에 어려움을 겪게 하는 ADHD의 원인에 진지하게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업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고, 소리 지르고, 뛰거나 생기 없이 무기력한 아이들을 가끔 보게 된다. 가만히 있으려니 미칠 것 같아서 이상 행동을 보이는 거라고 한다. 아이들의 주의집중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마음껏 놀지 못한 게 하나의 증거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주의력이 아니라 바로 놀이다.
놀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아이들을 놀게 한다는 교사나 학부모들이 늘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놀이에 목마르다.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부족하다. 치열한 입시 경쟁의 우리 사회에서 놀이를 우선순위에 놓는다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학교가 앞장서서 어린이의 놀 권리 지켜주는데 앞장서야겠다. 어린이헌장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어린이놀이헌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5월4일 ‘어린이들이 집·학교에서 충분히 쉬고 놀 권리를 보장하자’는 뜻에서 전국의 시·도교육감들이 모여 어린이 놀이헌장을 발표했다.
거듭 ‘어린이놀이헌장’ 선포를 환영하면서 어린이들이 마음껏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을 그려본다. 학교는 놀이를 많이 경험하지 못한 젊은 교사들에게 ‘놀이 연수’를 권장하고 학급 운영에 놀이 문화를 확산시키며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지켜 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