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무덤이나 다름없는데 이럴수가…”
4·3수용소 자리 주정공장 터 폐자재 수북
유적지 관리 소홀한 행정·'무심한 업체'
제주 4·3사건 당시 수천여명의 민간인이 수용됐던 ‘옛 주정공장 터’가 도로 공사 과정에서 돌 등 폐자재를 쌓아놓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 4·3 유적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8일 오후 5시께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옛 주정공장 터. 현재 이곳은 제주시 건입동 용진교에서 부두간까지 총 620m 길이의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인부들은 공사 과정에서 나온 돌, 철근 등을 옛 주정공장 터에 쌓아 놓고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관광객 김지현(26·여)씨는 “4·3 사건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곳에 왔는데 공사 중이어서 당황스러웠다”며 “이곳에서 민간인들이 강제로 수용되고 목숨도 많이 잃었는데 폐자재를 쌓아놓는 건 희생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 같다”고 했다.
옛 주정공장 터는 4·3 사건 당시 군에서 수천여 명의 민간인을 강제로 수용했던 곳이다. 이곳에 수용됐던 사람들 대부분이 재판도 없이 사형당하거나 엉터리 재판으로 육지의 형무소로 끌려갔다. 육지로간 사람들은 한국전쟁 기간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며 학살되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도 ‘행방불명인’으로 유가족이 시체도 수습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시영 4·3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은 “해마다 4월3일이면 수천여명의 행방불명인 유가족들이 가족의 무덤도 없이 슬퍼한다"며 “옛 주정공장 터가 어떻게 보면 이들의 무덤인데 거기에다가 폐자재를 쌓아 놓는 건 도의에 어긋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시공 업체에서 공사할 때 희생자들을 배려하고 행정에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시공 업체 관계자는 “도로를 닦기 위해 기존의 길을 파내면서 나온 돌 등을 따로 보관할 공간이 없어서 임시로 놓은 것”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치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