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위한 ‘소박한 경제’

2016-05-17     홍성직

카멜시티 ‘작은 경제’로 관광 성공
부탄 가난해도 가장 행복한 나라
높은 환경의식·도덕적 수준이 비결

슈마허 자본·성장의 ‘거대’ 문제 지적
제주도 물질적 팽창만 지향
진정한 자유위한 삶을 시작하자

10여 년 전 미국여행을 갔다가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을 만난 적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1번 국도를 따라 LA로 내려가다 페블비치 골프장을 지나서면 나오는 아담한 해변 도시 카멜 시티다.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카멜 시장을 잠시 맡았던 시절 할리우드의 예술인들을 불러들여 공방을 만들고 갤러리를 열게 했다. 주민들은 창고와 집을 고쳐 박물관 앤틱숍 분위기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펜션을 열면서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었다. 골목 모퉁이의 작은 정원과 간판은 물론이고 쓰레기통 하나까지도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참여해 아름다운 작품으로 변모시켰다.

관광도시를 만들려고 구도시를 밀어 새 빌딩을 높게 짓는 것 보다 평소 사용하던 창고와 자신들의 주거 공간을 숙소·카페, 공방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바꾸었다. 지역 주민이 투자하고 참여하는 작은 경제로도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미국의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 중 하나가 이렇게 시작됐다고 한다.

수 년 전 히말라야 부탄 왕국에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그 과정을 마친 부탄의 젊은이들을 제주로 데려와 기술교육을 시키는 프로젝트에 관여 한 적이 있다. 부탄은 국민소득이 300불도 되지 않는 빈국이지만 초등학교 과정부터 자국어와 영어를 수업에 병행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영어로 자기의사를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 원어민 선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발음이 매끄럽지는 못하지만 영어로 하는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났던 부탄의 관료들은 서방기술이나 자본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하게 부탄의 세계화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웃나라 네팔이 개방과 세계화 과정에서 피폐해진 상황을 부탄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탄은 관광이 주 수입원임에도 관광객을 통제한다. 교통 숙박 여행에 등급을 매겨 사전 허락과 함께 여행비를 선불해야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환경 과목과 함께 불교 중심의 세계관과 윤리교육을 통해 사회 전체가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높은 환경의식과 도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민행복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다. 자유 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자본주의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외침이 세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요즈음 부탄이라는 나라가 생각났다.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거대자본과 복합기술의 현대산업사회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하나의 악’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한 사람이 벌써 있었다. 그는 수십 년 전부터 서구식 대량 생산양식이 아닌 지역 고유의 자원을 이용한 지역적 생산 기반을 지켜야 지속 가능한 사회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도움 없이도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인간을 종속시키지 않고 중앙집권화와 관료주의를 낳지 않는 작은 단위의 기술을 ‘중간기술’이라 정의하면서 좋은 노동과 행복한 노동은 작은 일터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옥스퍼드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작가 E. F 슈마허가 바로 그다. 많이 버는 노동만이 가치 있는 노동이고 성장만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여기는 물질지상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 같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제주도와 제주 도민의 꿈도 물질지상주의 앞에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높은 빌딩, 뻥뻥 뚫린 큰길, 외자유치, 몰려오는 관광객, 고층 아파트, 첨단 대단지, 영어 교육 도시,중국인 마을 조성 등 대형 부동산 사업이 지금 제주 땅을 밟고 사는 제주 도민은 물론 그 후손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최근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거대도시 서울을 탈출해 돈과 성장과 경쟁을 포기하고 제주에 살고 싶다 내려오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고 있다. 어쩌면 이들의 ‘U턴’이 이런 성찰에서 출발해야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슈마허의 말처럼 인류가 물질적 팽창만을 갈망하는 무지의 삶에서 이제 진정한 자유를 향한 순례의 삶을 시작해야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