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리, ‘무소불위 심의委’도 큰 책임
인사혁신처는 올 3월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공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조치였다. 골자(骨子)는 ‘소극행정’ 공무원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주고, ‘적극행정’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실은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조치의 이면엔 ‘공무원의 갑(甲)질’이 자리잡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2015년 4분기 공직감찰결과’를 보면 건설 및 건축 관련 갑질이 가장 많았다. 법령에 근거도 없는 사유로 정당한 인·허가를 반려하는가 하면 부당한 조건이나 서류를 요구하는 등의 규제를 남용한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도내 건축비리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담당 공무원뿐만 아니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휘두르는 심의위원들에게도 상당 부분 그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법이나 규정을 임의적인 잣대로 재단함으로써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13 총선’ 과정에서 불거져 큰 파문을 일으킨 ‘하귀 공동주택 건축비리’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 공동주택은 당초 건축심의에서 재심의가 결정됐다. 하지만 재심의한 결과 원안에 가깝게 조건부로 통과됐다.
그 과정에 자칭 ‘해결사’인 민간업자가 끼어들었고, 청탁을 받은 공무원들이 심의위원들에게 부탁 전화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사안인 데도 불구하고 ‘로비’ 여부에 따라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은 경찰 수사결과 공무원들은 인·허가 편의를 봐주고, 대신 민간업자에게 인사 청탁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평소 “위법·불법을 눈감아 주도록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공사 시한에 쫓기는 을(乙)의 입장에선 법령이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일 처리를 조속히 해달라는 ‘급행료(急行料)’가 대부분”이라는 건축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 실감날 정도다.
사정이 이런데도 제주도는 “공무원들이 부탁한 것은 맞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통상적인 부탁’이었고, 따라서 건축심의 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강변(强辯)한다.
또 “공무원들이 돈을 받은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청탁’으로 보는 건 문제가 있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며 ‘제 식구 감싸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현 상황을 보면 ‘무관용(無寬容)의 원칙’에 따라 관련 공무원들을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던 도의 의지와 다짐은 벌써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원희룡 제주도정의 마인드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개혁이나 비리척결’ 운운은 절대로 삼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