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자에 인사 청탁하는 ‘무뇌 공무원’

2016-05-12     한경훈

건축 인허가 편의 봐주고 청탁 
‘청렴’ 외치지만 현실은 백년하청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행태

이해관계 민간인 공직인사 입김
인맥 중심의 부패고리 형성 우려 
제주도 인사시스템 점검 필요해 

“청렴을 생활화하고 규범과 건전한 상식에 따라 행동한다.” ‘공무원 헌장’ 네 번째 본문이다. 헌장이 아니더라도 이는 공무원이라면 마땅히 지켜야할 행동 준칙이다. 목하 제주 관가에서는 ‘청렴 바람’이 거세다. 공직자 청렴 결의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청렴을 주제로 한 공무원들의 기고가 신문지상을 도배하다시피 한다. 청렴이 제주도 공무원의 제1의 가치가 된 듯하다.

그러나 이면에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식의 몰가치 행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무원들이 ‘청렴’을 외치지만 현실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다. 잊힐만하면 터져 나오는 공직사회 부정부패에 도민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해하고 있다. 요즘 공동주택 인허가 비리 문제로 지역이 시끄럽다. 지난 4·13총선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애월읍 하귀리 소재 공동주택 건축과 관련한 경찰 수사 결과 공무원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제주도청과 제주시청 건축부서 등에 근무하는 공무원(6~7급) 3명이 브로커 청탁에 건축 인허가 편의를 봐주고 그 업자에게 인사 청탁까지 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말 브로커에게 원하는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거나, 다른 공무원을 승진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단행된 정기인사에서 두 명은 원하는 부서로 전보 또는 유임됐다. 승진 건도 부탁대로 됐다. 결과적으로 인사 청탁이 먹힌 셈이다. 해당 브로커는 “전·현직 고위 관료에게 전화를 걸어 이들 공무원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브로커의 인사 청탁과 실제 인사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향 여부를 떠나 공무원이 민간업자에게 인사 청탁을 했다는 자체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상식을 벗어난 꼴불견이다. 이 업자의 인사 청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 개연성이 높다. 하위직 공무원들이 개별적으로 그에게 인사 청탁을 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영향력을 알기에 인사 청탁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브로커는 건축 관련 업자로, 공무원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 관련 공무원 인사에 업자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그렇다면 ‘만수산 드렁칙’이 얽히듯 인맥 중심의 부패고리가 형성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번 문제의 공동주택 인허가 과정을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당초 건축계획은 지난해 11월 열린 1차 건축계획심의에서 층수 문제로 통과되지 않고 재심의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브로커가 활약하면서 2·3차 심의를 거쳐 원안(지하 1층, 지상 4층)에 가깝게 조건부 통과됐다. 도청 소속 공무원 1명은 건축심의위원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건축계획 심의 통과를 부탁했다. 인사에 힘을 쓸 수 있는 업자와 실무 공무원이 결탁하면서 무리한 인허가 결정이 난 것이다. 퇴직 공무원을 포함해 민간인이 인허가 부서의 인사에 개입할 여지를 줘서는 안 된다. 제주도 인사시스템에 허점은 없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능력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앉혀야 조직이 잘 굴러가고 모든 일이 잘 풀린다. 인사할 위치에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처신이 중요하다. 선후배 등 인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일반 공무원들도 각성해야 한다. 이해관계에 있는 업자에게 인사 청탁을 하는 ‘무뇌(無腦) 행태’가 재연돼선 안 된다.

모 공무원의 청렴 관련 기고 중 한 대목을 소개하겠다. “‘끓는 물속의 개구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개구리가 처음부터 끓는 물 안에 들어가면 깜짝 놀라 뛰쳐나오겠지만, 점점 따뜻해져 끓게 되는 물에 들어가면 위험한 줄도 모르고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에 반응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무관심한 사람들을 표현할 때 자주 인용된다. 부패 공직자의 경우 지연·학연·온정주의 등 사소함에서 비롯돼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토착비리에 얽히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점이 끊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다”(2016년 4월 26일자 제주매일, 정운규 자치경찰) 제주 공직자들은 끓는 물속에서 서서히 적응해 죽어가는 어리석은 개구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