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
이순(耳順) 바라보는 연극인 박 형
출연 앞두고 뇌출혈로 쓰러져
전투처럼 ‘연극’ 삶의 1980년대 초
고 추송웅의 ‘우리들의 광대’ 공연
관객 빠져나간 무대서 연습
고된 날들이었으나 즐거웠는데
박 형에게…
형이 한 달 전, 무대 출연을 앞두고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올 것이 왔다는 경망스런 생각이 들었어. 몇 년 전부터 몸을 돌보지 않고 꿈꾸듯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깨어나면 냉정한 현실에 몹시 난감해하리라 걱정했지.
결국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형은 극장 대신 병원 침대를 무대 삼아 누워버렸지. 약관(弱冠)의 나이에 연극의 관을 쓰고 불혹(不惑)이 지나도록 흔들림 없이 무대를 지키다 어느덧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어.
그동안 연극과 결혼해 배우라는 아이를 낳아 기르며 독자로 군대도 면제받은 가문의 대를 끓었지.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는 소식을 받고 찾아간 병실에는 늙은 누이가 관객 대신 홀로 병상을 지키고 있었어.
링에서 두들겨 맞고 막 내려온 격투기 선수 같은 얼굴로 판정에 문제가 있어 진 선수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어. 민감한 뇌수술이라 경과를 지켜봐야 된다는 의사의 소견을 뒷받침하듯이 부조리극의 대사 같은 형의 말을 들으며 피할 수 없는 불안감에 밀려 병원을 빠져 나왔지.
형은 불 꺼진 무대를 내려와 분장을 지우며, 나타나는 민낯이 새삼 어색했고, 가파른 소극장 계단을 올라 나선 대학로 거리의 현란한 불빛에 방향을 잃었을 거야. 습관처럼 찾아든 선술집 구석자리에 앉아 비로소 안정을 찾았겠지. 거듭되는 술잔은 휴면 중이던 화산을 깨우듯 연극의 열정에 불을 질러 긴 독백을 쏟아내며 밤늦도록 모노드라마를 연출했을 거구. 몸에 밴 감각으로 겨우 도착한, 텅 빈 객석처럼 적막한 방에 쓰러져 긴 꿈속으로 들어갔던 거야.
형! 기억나? 1980년대 초. 경기도 안양의 시장골목 안, 지하에 자리한 작은 소극장 ‘안양 사랑’말이야? 연극의 불모지였던 그곳에서 우린 토양을 쌓아가며 전투와 같은 삶을 살았어. 손수 벽돌을 올리고 무대를 만들며 개관 공연을 준비했고 드디어 당대 최고의 인기와 명성을 날리던 고 추송웅 선생님의 공연을 올리게 되었지.
공전의 히트를 한 ‘빨간 피터의 고백’의 후속 작품으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광대’라는 작품이었어. 가득 찬 관객이 빠져나가면 객석을 청소하고 무대를 정리한 뒤, 포스터와 풀 통을 들고 밤늦도록 거리를 누비며 포스터를 붙이고 돌아왔지.
그리곤 비로소 우리의 무대가 시작되는 거였지. 내가 조정실에 들어가 조명을 밝히고 음악을 틀면 형은 어둠속에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들의 광대로 변신해 갔지. 빈 의자를 상대로 우리들만의 공연을 펼쳤고 열기로 가득 했었어. 공연을 마친 우리는 녹초가 되어 소파를 붙이고 침대삼아 잠들며 내일을 꿈꿨지. 고된 날들이었지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는데…
형! 어느덧 30년이 훌쩍 흘렀어. 그동안 세상도, 사람도, 연극도 변했어. 아이돌스타를 내세운 뮤지컬이 무대를 점령한 지 오래고, 연극도 경박한 소일거리가 주류를 이룬지 오래잖아? 세상은 온통 잘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하고 예술은 가난한자들의 넋두리 같아.
형! 그만 내려가자! 더 이상 픽션의 무대에만 머물지 말고 논픽션의 삶을 직시하자! 형도 알거야. 내 죽마고우 대욱이. 끈질기게 펜을 놓지 않고 문학을 갈망하던 그가 결국 얼마 전 선배가 운영하는 음식점 주차 관리요원으로 취직을 했고, 극단 후배 종주는 잠깐 하겠다던 목수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잖아.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예전보다 건강하고 활기차 보였어. 삶의 전부였던 연극을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야. 잠시 내려놓고 둘러보자는 거야.
형! 숲 속에서 나와 언덕에 올라보자. 강도 보고 들도 보고 저 건너 다른 숲도 보자. 그러고도 정 그 숲이 그리우면 그때 들어가 다시 숲이 되자!
형! 텃밭에 채소를 심었어. 어서 일어나 놀러와. 마당에 불 피우고 고기도 굽자. 막걸리도 한잔 하면서… 연극 얘기는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