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은 아프지만 그래도 그 추억은…”
아라리오뮤지엄, ‘실연에 관한 박물관’ 국내 최초 제주서 열어
남녀의 이별, 사별, 친구, 자신과의 결별 등 물품 100여점 전시
“당신의 향기를 계속 가지고 있고 싶어서 평소에 입고 있던 옷을 상자에 그대로 넣어뒀어요. 7년이 지나니 더 이상 당신의 향기가 나지 않아요. 당신의 기타도 너무 낡았고, 당신이 쓰던 볼펜도 소중히 아껴 썼지만 다 닳아서 더 이상 써지질 않아요. 당신의 물건들이 하나씩 하나씩 내 곁을 떠나요.”
사별한 남편이 몰던 코란도 자동차를 7년 동안 마당에 놓아둔 아내. 아내는 늦었지만 집안 곳곳, 그리고 집 앞마당에 한참을 서 있었던 남편의 흔적을 보내려고 한다.
최근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델Ⅱ ‘실연에 관한 박물관(Museum of Broken Relationship)’에서는 이처럼 가족, 친구, 나 자신과의 이별 등 더 이상 지속 할 수 없는 ‘깨진 관계’를 놓아 주지 못한 보통 사람들의 치유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에서 시작된 ‘실연에 관한 박물관’은 10년 전 실제 연인이었던 크로아티아 미술가 올링카 비스티카(47·여)와 드라젠 크루비시치(47)가 설립하며 관심을 받았다.
국내 최초로 제주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 5일 공동창립자 올링카와 드라젠이 제주를 방문하고 실연박물관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풀어냈다.
이번 전시는 국내외 100여점의 작품과 사연을 함께 선보이며 전시 첫날부터 관람객들로부터 큰 감동을 이끌어냈다.
생일날 연인에게서 받은 감동의 반찬통, 힘들었던 고교생활과 이별했다는 의미의 ‘수학의 정석’, 무지개를 좇아 세계를 돌아다니다 외톨이가 된 한 남자의 무지개 트로피.
특히 제주 4·3사건 당시 끌려가는 남편에게 아내가 건네준 ‘빵 한 조각’ 사연은 결국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향한 애절한 그리움을 나타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올링카는 “실연의 감정은 세계 공통의 것”이라며 “전시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의 상실감뿐 아니라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해 희망 전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드라젠은 한국의 사연에 대해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 자신이 잘 해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깊었다”며 “특히 제주는 작은 지역 중심의 사연이 많았다”고 말했다.
기증자들은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과 ‘공감’하고 싶어 했고, 비록 지금은 떠나보내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으로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랐다. 익명으로 기증된 100여개의 진솔한 이야기들은 ‘내 인생의 헤어짐’을 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증된 물품들은 전시가 끝난 후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 있는 실연박물관 컬렉션에 영구 소장될 예정이다. 전시는 9월 25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