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참부모가 맞습니까”
자식 학대 사망시킨 ‘미친’ 사람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워
자신 소유물로 잘못 인식한 결과
‘비속살인’으로도 어린이들 희생
동물도 자기 새끼는 안 죽여
어린 영혼 꿈 꺾는 일 더는 안돼
인간들이 미쳤다. 다행히 전부는 아니다. 그렇지만 미친 인간들이 늘고 있음은 확실하다. 단적으로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다. 아니 동물만도 못한 인간들이다. 어린 자식을 학대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그런 ‘연놈’들이 우리를 미치게 한다.
6살 아이를 수시로 때리고 밥을 제때 주지 않다가 화장실에 가둬놓고 표백제를 뿌리는 등 학대하다가 지난 1월 찬물을 끼얹고 방치해 숨지자 암매장했던 경기도 평택 신원영 군의 친부(38)와 계모(38). 2012년 11월 7살 아들을 학대하고 사망하자 시신을 훼손, 자신의 집 냉장고에 4년간 보관해오다 지난 1월 적발된 부천 초등생 냉동보관 사건의 친부모(33). 지난해 3월17일 7시간 동안 13살 중학생 딸을 무차별적으로 폭행, 숨지게 한 뒤 11개월 가까이 시신을 미라 가까운 상태로 집에 방치해온 경기도 부천의 목사 친부(47)와 계모(40). 지난 3월 술을 마시고 인터넷 게임을 하는 데 생후 3개월된 딸이 계속 울자 방바닥에 떨어뜨려 다치게 한 뒤 방치해 숨지게 한 부천의 22살 부부. 지난해 12월까지 3년4개월간 계속된 굶주림과 폭행 등을 견디다 못해 도망쳐 나온, 12살임에도 굶주림과 학대로 4살 덩치에 몸무게가 16㎏에 불과했던 ‘인천 맨발 탈출 소녀’의 친부(32)와 동거녀(35).
기억을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역겹고 소름이 끼치는 사건들이고 인간들이다. 이런 일들을 덕담이 넘치고 축하해야할 ‘어린이 날’에 굳이 사건 파일에서 꺼내는 것은 ‘반성’을 위해서다. 우리들도 범죄가 발생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범’일 수도 있다는 자성(自省)이다.
그리고 정말 인간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꼈던 취재 경험도 소개해 본다. 20년 다된 일임에도 언제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1997년의 일이다. 취재 관련 제보를 받았다. 지체장애인인 8살짜리 A군을 입양해갔던 미국인 부부가 다시 제주에 들어와 역시 지체장애자인 A군의 2살 아래 동생 B군도 입양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장애아 한 명을, 그것도 미국인이 입양한 것만도 ‘뉴스’인데 또 다시 입양이라니 사연도 궁금하고 즉시 달려갔다.
이유가 감동이었다. A군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니 형제끼리 의지가 되라고 B군도 데려가 같이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인 부부는 짐을, 그것도 어쩌면 영원히 벗어던질 수도 없는 짐을 둘씩이나 기꺼이 선택한 것이다.
속세에 ‘찌든’ 기자의 상식에는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힘들지 않겠느냐”고. 그들의 답은 우매한 기자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우리는 사랑을 나눠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그리곤 “애들이 자라서 생모를 찾아가겠다면 기꺼이 보내주겠다”고 말을 이었다. 입양한 애들을 잘 보살피며 키우는 게 보람이고 목적이라고 했다. ‘소유’가 아니었다. 한 차원 높은 사랑이었다.
그렇다.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입장도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아이들의 탄생은 부모에겐 축복이다. 그러나 부모는 그 아이들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잘 키우라는 의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학대뿐만 아니라 이른바 ‘동반자살’로 표현되는 비속살인으로도 아이들이 희생당하기도 한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 일을 저지르는 부모의 가슴은 더욱 찢어졌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린 영혼들을 죽인 죄가 사해지지 않는다. 아니 경감조차 되지 않는다. 왜 아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는가. 그 누가 어린 영혼들의 꿈을 꺾을 자격을 줬단 말인가.
동물들도 자기 새끼는 죽이지 않는다. 어쩌면 동물들이 나은 지도 모르겠다. 절대적인 보살핌으로 새끼를 키워내곤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유롭게 보내준다. 가끔 ‘동물의 왕국’이 인간세계보다 더욱 인간적일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천의 목사는 지난달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재판부가 “피해자의 친아버지가 맞나”라는 질문에 “네. 맞습니다”라고 답한 뒤 “피고인은 인간이 맞나”라는 질문에는 침묵했다고 한다. 최소한 자식들에게 만이라도 ‘인간적’이자고 94번째 맞는 어린이날에 제안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