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순직’ 경찰 자료 오기 논란
14명을 1000여명으로 ‘부풀려’
‘공비’ 3000여명 교전 표현
“학살 정당화…수정 필요”
경찰 “민감한 사안 고민중”
속보=제주지방경찰청사 내 제주 경찰 추모 조형물에 4‧3 사건 당시 순직한 경찰들을 “대간첩작전 중 전사”했다고 표기하고 있어 논란이 인 가운데(본지 지난달 22일자 4면 보도), 경찰에서 관리하는 ‘순직경찰 현황 자료’에도 “공비”라는 용어가 사용돼 더 큰 논란이 예상된다. 또 이 자료 내용에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 경찰로부터 받은 ‘순직경찰 현황 자료’를 보면 제주 4‧3사건이 벌어졌던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순직한 경찰 141명 가운데 총 122명이 “공비”와 교전 중에 사망했다고 나와 있다. 공비는 ‘공산당 유격대’를 낮춰 부르는 말로 ‘빨갱이’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익명을 요구한 전 제주 4‧3 중앙위원회 관계자는 “공비는 지극히 이념적인 용어로 경찰과 같은 국가 기관 자료에서 쓰이기에는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며 “제주 4‧3특별법에서 규정한 ‘4‧3진상조사보고서’에는 공비가 아니라 ‘무장대’라는 중립적인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 쪽에서도 공비가 아닌 무장대로 표현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순직경찰 현황 자료’에는 무장대 수를 과도하게 부풀려서 표기하는 등 역사적 사실에서도 수차례 오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1948년 4월 3일 무장대가 제주시 화북지서를 습격했을 당시 김모 순경이 “공비 약 1000여명과 교전 중에 순직”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언론보도와 4‧3진상조사보고서 등에 따르면 무장대 14명만이 그 교전에 참가한 것으로 나온다. 심지어 자료 내용 중에는 몇 십여 명의 무장대와 싸운 사건을 “3000여명의 공비와 교전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4‧3사건 전 기간에 걸쳐 무장 세력은 500여명 선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 당시 군‧경이 과도한 진압으로 수만여 명(유족회 추산 3만여명, 진상보고서 1만4000여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장대 수나 공격을 부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경찰에서 그때 나온 부정확한 자료들만 참고하다 보니 순직경찰 현황 자료 내용에 오류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제주 경찰 관계자는 “4‧3사건과 관련된 용어 선택과 내용의 문제는 지금도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어떤 단어를 써야 할 지 현재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