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 주목받는 ‘협치(協治)’

2016-04-27     한경훈

元지사 제1공약 협치
도정 2년 구체적 성과 없어
일각선 ‘소통부재’ 지적도

여소야대 3당 구도 속
여·야 정당 ‘협치’ 한 목소리
제주도 새정치 흐름 타야

원희룡 제주도정의 제1공약은 협치(協治)다. 원 지사는 후보 시절 도지사의 권한을 도민과 함께 공유해 수평적으로 권력을 나누는 협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공약이 제대로 구현되는지는 의문이다. 민선 6기 출범 후 2년 동안 협치에 의해 추진된 정책은 뭘까.

지사가 시민단체와 대화하고, 도정이 의회와 머리를 맞대고 하는 움직임은 있었으나, 협치로 인한 구체적인 정책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협치는 고사하고 감귤산업 구조혁신, 제주신항 개발계획 등 굵직굵직한 정책 추진에 있어 “소통 부재”라는 소리를 들은 원 지사다. 현재 제주도정에서 협치는 정치 슬로건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흐지부지되는 감(感)도 있다.

그런데 협치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정치의 중심 테마가 됐다. 총선 결과 국회 ‘여소야대’에 3당 구도가 되면서다. 모든 정파가 ‘협치’를 외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는 한 정당이 독주할 수 없고, 혼자 힘으론 아무 것도 못하게 됐다. 국회선진화법까지 있어 3당의 협력이 없으면 법안 하나도 처리가 불가능한 구조다. 협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4·13총선의 민의(民意)는 ‘협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가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국민들은 협치로 그간의 독선과 갈등의 정치가 종식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정치사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88년 실시된 제13대 총선에서다. 당시 의석 분포는 집권당인 민정당 125석, 평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이었다. 야당의 주축은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이었다. 하지만 첫 여소야대 정치실험은 1990년 3당(민정·통민·신공화) 합당으로 물거품이 됐다. 선거 민의는 왜곡됐다.

하지만 이번은 그때와 다를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38석)이 지향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정강정책 전문에서 새누리당과 더민주 양당 체제를 ‘시대정신을 망각한 독과점 양당체제의 적대적 공존’으로 규정했다. 국민의당만 굳건하면 협치를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치가 행해질 수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15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국회에서 협치의 진면목을 보여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더민주와 새누리당 공히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제 지역이나 좌우 이념갈등을 기반으로 지지세를 구축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20대 국회가 개원하면 중앙 정치에는 ‘상생·협치’ 모드가 만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들만의 정치’가 아닌 민심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참 정치’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지방정치도 이런 흐름을 타야 한다. 제주지역의 경우 앞서 원 지사가 협치를 주창했다. 제주도정은 ‘갑 속에 든 칼’을 꺼내 손질할 때가 온 것 같다. 출범 초기 정신으로 돌아가 ‘도정의 제1의 방침’인 협치가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제주사회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협치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정책 등을 결정하기에 앞서 협의와 공감대 형성을 중시하는 정신을 가지면 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위정자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원 지사는 총선 후 “당선인과 초당적 협력관계를 통해 제주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도정과 국회의원의 정책협의회 정례화 등의 구상을 밝혔다. 원 지사는 이에 더해 도의회와의 협치 강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오히려 협치의 제1의 상대는 도의원이어야 한다. 도정과 의정의 불필요한 갈등은 최소화해야 한다. 예산갈등 등이 되풀이 돼선 안 된다. 그러자면 우선 도정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협치를 위해선 도의원들의 양식(良識)도 중요하다. 협의의 자리를 민원 해결의 창구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협잡(挾雜)이다.

제주지역에는 집값 급등, 해군기지 갈등, 청년 일자리 등 풀어야 할 현안이 많다. 도정과 의정이 협력해 이런 문제들의 해결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이를 위한 협치가 가동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