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축제’ 제주 고사리 꺾기

2016-04-26     김영희

매년 4월 제주 들판마다 사람들
고사리를 찾는 사람들
제사상 올라가는 ‘귀한’ 음식

하지만 실종된 시민의식 아쉬움
농작물 훼손에 쓰레기까지
배려와 관심으로 제주환경 지키자 

해마다 4월 이맘때면 제주의 들판엔 사람들이 넘쳐난다. 형형색색 옷을 입고 배낭을 진 사람들, 다름 아닌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이다. 차를 댈 수 있는 곳이면 고사리 꺾으러온 사람들의 자동차의 주차 행렬이다. 단체 관광객들에게 고사리 꺾기 체험의 기회를 주기 위해 관광버스들까지 합세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들판 구석구석 사람들이 안다니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여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온통 고사리에 대한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언제나 배신하지 않고 많은 고사리를 내어준다는 자기만의 ‘명소’ 자랑에서부터, 운동 삼아 고사리 꺾다가 뱃살이 들어갔다는 둥, 큰 각시·작은 각시가 고사리철 만큼은 유일하게 벗 삼아 다닌다는 둥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제주사람들이 고사리에 열광하는 것은 ‘귀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제주고사리는 육지부 고사리와 달리 실하면서도 부드러워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제주고사리를 ‘귀한’ 선물로 여긴다.

그리고 고사리가 올라가지 않는 제사는 없다. 비극의 4·3 사건 이후 봄이 되면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많다. 그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제사 음식을 주고받으며 나누어 먹는 정감도 있다.

어쩌면 고사리는 4·3을 겪으며 배고픈 도민들에게 먹거리를 주고 싶어 한 뿌리에 아홉 번씩이나 순을 내어주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고사리가 꺾여도 계속해 아홉 번까지 다시 돋아난다는 뜻으로 ‘고사리는 아홉 형제’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늘 향해 주먹 쥔 손 모양새, 그러고 보니 고사리는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 식물일지도 모른다. 유난히도 제사치레를 많이 하는 제주의 아낙네들은 고사리채취를 큰 행사로 여긴다. 길지 않은 기간에 1년 동안 쓸 고사리 장만을 위해 온 들판을 이 잡듯이 뒤져야 한다.

제사 때가 돌아오면 돈 봉투보다 더 반가운 게 직접 꺾은 좋은 고사리를 받는 것이다. 동서간에 고부간에 고사리 공세만큼 큰 공로가 어디 있으랴, 그만큼 고사리를 귀하게 여긴다.

고사리는 많지만 꺾는 사람 또한 많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인지 봄은 제주여성들의 강인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계절이기도하다. 최근에는 고사리 소풍을 나오기도 한다. 도시락을 싸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고사리 채취함에 있어 도민들의 시민의식이 너무나 부족함을 느낀다. 요즘 중 산간에 심심치 않게 노루의 출현을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루망 설치를 하는 농가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노루가 아닌 고사리꾼들의 출현으로 남의 공들여놓은 밭이 망가지고 노루망까지 훼손되곤 한다.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고사리 철이면 반갑지 않은 고사리 손님들이다. 정말 밭주인들 입장에선 골머리를 앓을 일이다.

하물며 조상을 모시는 무덤가의 돌담마저 무너뜨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들판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며 용변까지 ‘덤으로’ 두고 가는 경우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건조한 봄철 산불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여기저기 버려지는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는 물론 우리가 무심코 버린 생수병도 태양과 만나면 돋보기 역할도 한다고 하니 조심해야할 일이다. 무엇보다 담배꽁초나 생수병이나 제주의 들판에 버릴 게 아니라 갖고 돌아와 지정된 장소에 버린다는 생각을 가져야할 것이다. 각종 쓰레기가 불쏘시개가 되어 오름 하나를 순식간에 태워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작은 배려와 관심이 아름다운 제주환경을 지키는 길이라는 걸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보여주지 못할지언정 쓰레기로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남자들에게 부탁하고픈 말이 있다. 고사리 밭에서 외간 남자는 경계대상이니 만큼 “남자들이여! 볼일 급해도 여자들 있는 곳에서 허리띠를 풀지 말지어다” 놀라서 자리를 황급히 비키는 여자들의 고사리가방을 털어가는 요즘 수법이란 얘기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