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끊고 희망찾아 굴린 휠체어 바퀴

척수장애인협 제주도협회
오늘 표선서 ‘올레길 탐방’
“삶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2016-04-25     고상현 기자

“기자님, 사진 한 장 예쁘게 찍어주세요.”

25일 오후 2시30분께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 앞바다. 휠체어를 탄 척수장애인들과 봉사자들이 나란히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날은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제주도협회에서 마련한 올레길 탐방이 있었다.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상체를 쓰지 못하는 척수장애인들이 표선해수욕장을 목표로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30여 년 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양문숙 제주도협회장은 이날 봉사자로 참여한 부인 문장숙(60)씨와 사진 한 장을 더 부탁했다. 양씨는 “평상시에 아내와 예쁜 곳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몸이 불편해서 잘 그러지 못했다”며 “오늘 모처럼의 행사로 아내와 함께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와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한동안 에메랄드빛 바다에 취한 듯 좀처럼 다시 길을 나서지 못했다. 양씨는 “여기 계시는 분들은 비장애인이었다가,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다. 사고 이후에 삶을 비관해 우울증을 앓거나,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려서 고립된 삶을 보통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용기를 내 사회에 돌아가려고 해도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어 좌절하고는 고립된 삶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제주도협회에서는 척수장애인들의 이러한 ‘고립’의 악순환을 끊고, 다시 이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취업 프로그램, 스킨스쿠버 강습, 올레길 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이두석(53)씨는 “10여 년 전 사고를 당하고 온갖 통증으로 생활이 어렵고, 취업 문제 등의 사회적 벽에 부딪혀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다”며 “이곳에서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고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면서 다시 삶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사람들은 다시 길을 나섰다.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목적지인 표선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9㎞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즐거워했다. 3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를 앓게 된 김성배(67)씨는 “우리도 비장애인들처럼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 같다”며 “함께 하니깐 힘들어도 끝까지 갈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사람들은 백사장을 배경으로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었다.

“다시 못 올 수도 있으니깐, 사진 예쁘게 한 번만 더 찍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