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보는 ‘임지가 곧 고향’

2016-04-11     정태근

부임한 곳서 최선 다하자는 각오
벌써 ‘의회맨’ 현안에 새로운 시각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사무처장으로 부임하는 날 뇌리를 스치던 말이 있다. 바로 ‘임지(任地)가 곧 고향’이었다. 과거 지방자치 시행 이전 시장·군수로 발령을 받은 뒤 부임 일성이기도 했던 말인데, 그게 생각난 것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부임 받은 곳을 내 고향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낸 것이리라.

문득 떠오른 이 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제주도의회 사무처장이 한 기관의 장이 아니라 보좌기관의 책임자 위치이긴 하지만 집행기관과는 역할과 기능이 전혀 다른 사무처를 통괄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직의 길을 걸어가야 해서 느낀 무게감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다짐한 것은 “의회에 왔으면 철저한 ‘의회맨’이 되자”였다. 이것이 ‘임지가 곧 고향’이라고 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또 그렇게 해야 진정한 공직자의 자세일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특히 의회와 도는 그 기능과 역할 자체가 본질적으로 달라서 집행기관의 시각으로 일하면 집행기관을 대변하는 수준의 보좌로 전락하고 말 것이고, 결국 지방자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생각의 깊이와 행동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실 도의회 사무처장으로 부임해 3개월 남짓 근무하면서 집행기관과 의회의 차이를 절감한 것이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에 따른 도의회의 대응이었다. 사실 도의회 의원 40명 모두가 여·야 구분 없이 해군이 강정마을 주민 등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권 청구 소송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집행기관의 처지에서 보면 법을 들여다보고 제도적인 문제점은 없는지, 향후 소송의 전망은 어떨지 등을 논의하는데 더 집중했을 터인데, 도의회는 40명 전 의원이 서명으로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도민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해결하려는 진정성이 의회에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벌써 의회맨이 다 돼가고 있다는 반증일 터,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막상 의회 사무처장의 자리에 앉고 보니 집행기관에서 느낄 수 없었던 많은 애로사항이 눈에 보여 안타까움이 크다. 도민의 대표기관으로서 도민과 호흡을 나누기 위한 공보기능의 미흡 문제도 그렇고, 의회의 핵심 기능인 입법과 예산심의 기능 강화를 위해 입법정책관을 개방형 직위로 임용하는 문제, 예산결산특별전문위원의 4급 직위 임용 등이다. 이 또한 사무처장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에 빠져든다.

예전 집행부 간부공무원으로 있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많은 간부 공무원들이 의회에 오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진다. 필자도 그랬으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사무처장은 집행부 간부공무원들과 의원들간 소통의 다리가 돼 언제든지 편안하게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커진다.

의회의 공직자들은 업무 특성상 집행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일을 해내야 한다. 혜민 스님은 “불행한 사람이란 남의 잘못들만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라고 했다. 비판의 어려움을 경책하는 말일 것이다. 잘못만을 볼 게 아니라 정책의 긍정을 강화 시키는 대안 마련에도 힘써 나갈 수 있도록 업무연찬에도 충실해져야 하겠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의 발밑을 먼저 살펴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모든 일을 하면서 자기 성찰로부터 출발한다면 어디 청렴문제뿐이겠는가. 요즘 청렴에 대한 우리 공직자들의 생각이 언론지상에 많이 오르내리는 것을 본다. 그렇게 돌아보고 반성하는 마음이 바로 청렴의 길이다. 더 높은 청렴으로 가는 길이다.

이게 쌓여 더 큰 일을 하는 동력이 되지 않겠는가. 그 자리가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 충실한 그런 공직자, ‘임지가 곧 고향’이라고 했던 선배 공직자들의 일성을 다시 가슴으로 느껴보자. 생각과 행동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