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화해와 상생의 길

2016-04-07     임무현

‘4·3’ 수많은 세월 흘러도 진행 중
갑론을박 상반된 시각 대립
이념 따라 ‘항쟁’ ‘폭동’ 등 평가 다양

최근 논란은 희생자 53명 재조사
양측 이성적 토론으로 결론내야
양보 없는 화해는 불가능

예전 어느 시골의 한 마을 공터에서 총살당한 스물한 살 여인이 있었다. 4·3 당시 산에 올라간 폭도를 사랑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빨갱이로 단죄된 후 꽃다운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필자의 이모님이다. 그땐 연인과의 사랑도 죄가 되던 시대였지 싶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4·3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금도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고, 상반된 시각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3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 있다. 표출되지 않고 있을 뿐 제주인들의 가슴 속 깊이 내재돼 있는 상흔이며, 트라우마다.

몇 년 전 방영됐던 ‘넉시오름의 세 가지 이야기’가 그를 방증하는 사례들 중 하나다. 수 천 만원을 들여 편찬한 마을지 배포를 앞두고, 그에 수록된 4·3 이야기에 대한 주민들의 갈등을 다뤘다. 마을지를 둘러싸고 민간인·산사람·군경 희생자 유족 측이 각 견해를 달리했고, 결국 마을 총회에서 배포 중단을 결의했다는 내용이다.

그들의 시각을 축약해보면 한마디로 한 축은 민중항쟁이라는 개념이고, 다른 한 축은 폭동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4·3을 일컬어 ‘봉기’ ‘항쟁’ ‘폭동’ ‘사태’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어 왔다.

한 보수단체는 창립 선언문에서 “제주4·3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바로 알아야 할 역사다. 정부 보고서는 4·3의 핵심인 성격 규정이 안 된 반쪽 보고서이고, 그 내용도 왜곡되고 날조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과거 재임시절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주4·3은 공산당 폭동으로 일어났다’는 언행을 했다”며 민중항쟁이라고 보는 진보성향 측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진보성향 측은 “제주4·3은 미군정이 실시하려는 단독 선거를 반대하고 나선 제주도민들에 대한 공권력의 탄압에 항거한 민중항쟁이다. 국제법에서도 금지된 초토화 작전, 재판절차 없는 즉결처분 등 불법적 행위들이 공권력에 의해 자행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정부가 제주도에 “희생자 중 53명에 대해 재조사를 진행하라”며 재심의 요청을 한 것은 이미 국가가 결정한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2001년 헌법재판소는“제주4·3사건 발발의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 기타 무장유격대와 협력 진압 군경과 그 가족 등을 살해한 자, 가옥과 경찰관서 등 공공시설에 대한 방화를 적극 주도한 자들은 희생자로 볼 수 없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재심사는 진실규명을 위한 절차일 수 있고, 다른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불량위패 재심사는 지난 날 4·3 중앙위원들의 동의사항으로 알려지고 있고, 그 범위도 53명에 불과하므로 재심사 거부 명분은 미약해 보인다.

이렇듯 이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4·3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과 극이다. 그렇다고 대립과 갈등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그들만의 세미나 등을 통해서 대립각만 세울 뿐 대화에 나선 적은 없다.

그러나 이제 양측은 진실규명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나설 수 없다면 행정기관이 중재해야 한다. 갈등을 해소시킬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측이 그 테이블에서 역사적 사료를 내어 놓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이성적으로 토론하고, 대화해야 한다. 접점을 찾아야 한다.

하나의 사건에는 하나의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 두 갈래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아전인수적 인식 탓이거나 이념과 이해관계의 잣대 때문이다. 화해를 위해서는 조금씩은 양보해야 한다. 양보 없는 화해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양측 간의 대화와 토론의 자리는 이 시대 4·3 갈등을 치유할 수 있고, 화해하고 상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탈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