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제68주기에 부쳐
‘아비규환의 역사’ 제주민의 아픔
평화·인권살아 숨쉬는 제주 기원
해마다 4월이면 제주 섬은 온통 샛노란 유채꽃으로 뒤덮힌다. 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한 해에 1300만명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 제주. 하지만 관광의 메카 제주엔 68년 전 피비린내 나는 학살로 아비규환이었던 역사가 있었다.
“나는 죄가 없으니 아무 일 없을 거야”라며 집을 나선 아들과 아버지 등 가족들이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을 때의 비통함. 68년전 제주 섬은 통곡의 섬이었다. 가족을 잃은 슬픈 울부짖음이 끊이지 않는 비탄의 섬 이었다. 그때 죽어 간 사람들 중에는 두 세 살배기와 젖먹이도 수도 없이 많았다. 이들의 억울한 죽음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가슴 속에 피멍으로 남는다.
또한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 제주라는 ‘킬링필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를 타고 밀항을 시도했다. 지금 재일동포 60만명 중에 제주출신이 3분의1인 20여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당시의 삶을 찾아 절박하게 떠나야 했던 우리 제주민들의 슬픈 역사를 말해준다. 한밤중에 통통배에 몸을 싣고 굶주림을 참으며 불안한 마음과 가족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을 삼키며 망망대해로 나아갔던 불행한 역사. 그것이 바로 4·3이다.
4·3이 올해로 68주년을 맞았다. 공식 신고된 희생자만 1만4200여명에 유족 5만9000여명.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역사에 이렇게 불행한 역사가 또 어디 있었을까? 혹자는 당시 제주도 30만 인구의 10%인 3만명이 희생을 당했다고 한다.
제주도처럼 씨족 주의적 문화를 이어가던 작은 곳에서 이같은 사건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픈 역사다. 제주4·3 희생자의 가족과 친척들은 오랜 시간 전 근대적인 ‘연좌제’의 그늘에서 늘 고통을 받아왔다.
역사의 가해자들은 역지사지를 통해 가슴 속에 한을 품은 유족들의 입장을 반드시 이해해야한다. “만약 당신의 가족들이 어느 날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 시신으로 돌아왔다면, 그리고 행방불명이 돼 소식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거의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통해 후손들에게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전달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4·3은 특별법 제정에 이어 국가추념일까지 지정됐다. 제주만의 슬픈 역사가 아니고 대한민국이 함께 슬퍼하고 경건하게 기념해야할 역사적인 날이 된 것이다.
4·3정신은 화해와 상생을 말한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2013년 오랫동안 ‘견원지간’이었던 제주경우회와 화해의 손을 맞잡았다. 이는 그동안 반목과 질시로 상처를 줬던 낡은 이념과의 종식의 출발선이다. 제주도민과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두 단체의 통 큰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이후 두 단체는 상호 이익을 공유하고 화해와 상생에 앞장서고 있다. 4·3정신은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후대에 전파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극우 보수단체들은 ‘재심사’를 운운하며 4·3흔들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참으로 비통하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선 4·3의 완전한 해결은 요원하다. 우리 유족회는 어떤 단체와도 화해와 상생 평화의 4·3정신을 바탕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공동의 번영과 평화의 길로 함께 할 것임을 천명한다.
어제 제68주년 제주4·3희생자 국가추념식이 거행됐다. 많은 유족과 도민들이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4·3평화공원을 방문, 화해와 상생·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겼다.
제주에만 국한된 행사가 아닌 대한민국 곳곳에 4·3평화정신을 알리고 온누리에 평화와 상생의 기운이 퍼지는 행사였다. 그날 무고하게 희생된 수많은 억울한 영령들이 영면하고, 그 억울한 죽음들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제주를 평화와 인권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평화로운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