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노동의 종말
‘기계-인간’ 세기의 대결서 승리
인류 미래 장밋빛만 아니
기계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우려
로봇-육체·AI-지식 노동자 대체
영역 줄어든 인간 존엄성 어디서?
우리 스스로 미래 준비해야
4국 만에 이세돌 9단이 첫 승을 거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흥분을 넘어 5연패의 우려를 피했다는 데 안도하는 듯하다. 최근 최고의 화제는 아마도 인공지능(AI) ‘알파고’일 것이다.
지난 10일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첫 승을 거둔 후 트위터에 “이겼다.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는 글을 올렸다. 구글로서는 아마도 이 첫 승이 인간이 달에 착륙한 것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일 것이다.
그간 인공지능은 인간을 상대로 체스·장기 등의 분야에서 인간을 압도하며 승전보를 올려왔지만 바둑만큼은 예외였다. 바둑의 경우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에 가깝고 또한 다른 어떤 종목보다도 인간의 창의적이고 생각하는 능력, 직관력이 더 중요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펼친 대결에서 내리 3연승 등 종합 4대 1의 승리를 거두면서 인공지능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비록 4국의 결과가 그 판단을 어느 정도 유보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사실 그간 인공지능 기술은 IT산업 뿐 아니라 금융·의료·국방·제조·교육 등 분야를 막론하고 그 영향력을 넓혀 왔다. 대표적인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알파고 개발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수명 연장·재생산에너지·생산력 향상 등 수많은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아내 인류의 삶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인류에게 축복만을 가져올까. 인공지능에 대한 장밋빛 기대의 반대쪽에는 ‘인류 재앙’이라는 암울한 미래를 경고하는 이들도 많다. 인간이 모르는 사이에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형성하거나 인간보다 똑똑해진다면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처럼 전쟁과 파괴, 살육이나 생체조작 등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른바 유토피아에 반하는 디스토피아의 출현이다.
이렇게 직접적인 재앙이 아니더라도 이미 디스토피아의 위협은 인간의 노동을 둘러싸고 현실화되고 있다.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WEF)은 그간 기계가 육체노동자를 대체해 왔듯이 인공지능이 지식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과학 등의 영향으로 2020년까지 주요 선진국에서 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컴퓨터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인간의 노동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1994년에 출간된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에 잘 나타나 있다. 기술이 인류를 노동으로부터 추방할 것이라는 리프킨의 예언은 20년이 지난 지금 더욱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직관과 창의력이 필요한 고도의 두뇌게임인 바둑에서 알파고가 세계 최강의 이세돌 9단을 꺾은 것은 인공지능이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단순 작업은 물론 고도의 정신노동, 예술과 장인의 영역도 인간의 자리를 빠르게 밀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본격 선보이고 있는 무인자동차와 드론이 택시기사·배달원·소방관·경비원 등의 일자리를, 로봇 자산관리가 펀드매니저·세무사·회계사의 일자리를 빼앗는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점점 더 로봇에 자리를 내주게 되면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빈곤화되는 디스토피아가 펼쳐질지 모른다.
사라진 만큼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지도 의문이다. 마차를 몰던 마부가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로 바뀐 20세기 초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그 일자리도 이미 로봇이 물려받고 있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노동의 영역이 갈수록 줄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서 발견해야 할까. 인간의 손으로는 앞으로 뭘 해야 하는가. 알파고의 승리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리프킨은 다음과 같이 설파하면서 책을 끝맺고 있다.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 신호일 수도 있다.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