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바뀌었어야할 고입제도
2019년 고입연합고사 폐지 결정
학력저하 크게 우려 안해도
인재·지식 정의도 시대 따라 변화
암기 위주 교육 더는 안 돼
수업 결과보다 과정 중심 바람직
평가도 계량화 함정 조심해야
“나보다 똑똑하다 느껴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이구동성으로 “이 무슨 거만한 소리인가”라고 할 것이다. 모두가 비웃을 것이기에 말하지 못했을 뿐 솔직한 생각이다. 이 얼토당토않은 자신감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갖게 됐다. 학교에 다닐 때는 시험성적으로 너무도 명확하게 “넌 최고가 아니야”라고 강조해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못했던 듯하다.
명백히 주관적인 것이지만 똑똑하다고 여기는 기준은 독서를 기반으로 한 지식과 상식의 총량적 측면, 그리고 세상을 보는 통찰력에 근거한다. 대부분이 가난한 시절에 좋은 부모님을 만나 상대적으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고, 결정적으로 컬러학습대백과사전 전권이 낱장으로 분리되고 헤어질 정도로 동생들과 퀴즈게임을 즐겼다. 단지 놀이였을 뿐인데 큰 공부가 됐다. 공부를 재밌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행운을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나처럼 거만한 생각을 한다. 단지 지식위주의 사회에서 학벌로 증명할 수 있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아니면 ‘넌 똑똑하지 않아’라고 여기게 되는 분위기에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뿐이다.
똑똑함의 정의도 세상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세상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제 공기업과 대기업 채용에서 입사지원자의 학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공부 잘하면 똑똑하다’는 공식의 오류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지식이 되려면 다른 것도 함께 채워져야 하는 데 지식만 채워지는 우리의 교육환경도 한 원인이다.
2019년도 고입연합고사 폐지 결정에 대한 가장 큰 우려로 학력저하를 거론한다. 산업화시대 이후 지식기반사회에서 지식노동자를 양산해야 했던 우리의 입장에서 연합고사나 학력고사 등이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선별하는 역할을 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을 중국과 인도가 더 잘하게 되다보니, 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창의형 인재를 요구하고 있으나 우리의 교육은 이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형은 또 다르다. 우리 상품의 경쟁력은 디자인·스토리·공감·통합력·유희 등의 이른바 감성형 인재를 통한 차별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창의형 인재를 말하고 감성형 인재를 말해야 할 시점에 1960~70년대 고성장을 뒷받침해 준 향수에 젖어 학력만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대입제도는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입학사정관제도 등으로 변화해 왔다. 수학능력시험의 취지가 이해와 응용, 추론과 논증능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진화했다면, 입학사정관제는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과 능력에 초점을 두었다.
교육이 단순히 지식암기 위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시대적 필요성이 교육의 변화를 강력하게 주문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제주교육의 일선 현장은 여전히 명제적 지식의 암기능력에 대한 관점을 바꾸지 못했다. 그 표상이 연합고사다. 진작 바뀌어야 했었다.
문제는 외부 상황이 변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변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자세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합고사를 폐지했으니 내신 지필고사에 매달려야 한다는 생각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그 또한 경쟁의 병폐로 모든 것을 삼켜버릴 블랙홀이다.
내신평가도 지금까지 시행해 온 주입식 교육 평가방법으론 안 된다. 계량화의 함정에 빠져 사지선다형과 단답형 문제를 고집하고, 비교과 평가에선 실적건수를 집계해 평가한다면 일선학교와 학부모들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래핵심역량을 배양하는 수업방식의 개선이 그 바탕이 돼야 한다. 암기보다는 이해중심, 토론과 사색, 인성, 결과보다는 과정중심 평가가 돼야 한다.
결국 미래의 인재상은 비계량 평가의 지속적 확대에 있다. 비계량 평가에 대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명확한 채점 기준 제시와 두 분 이상의 선생님에 의한 공동 평가제를 도입하고 외국사례에서와 같이 평가결과를 비공개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연합고사 폐지를 넘어 중학교 교육과정 정상화로 가는 명품 제주교육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