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

2016-02-23     최한정

지난달 30여년만의 한파·폭설
제주도 상상초월 ‘재난상태’
4륜 동호인 고립차량 구조 활동

유사시 대비 생존요령 습득 필요
시동 끄지 말고 라이트 켜기 등
스스로 탈출 물론 이웃 구할 수도

부드러운 바람과 온화한 기온으로 매료시켰던 제주가 겨울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바꿨다. 지난달 상상을 초월하는 30여년만의 한파가 몰아쳤다. 당시 제주는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도내 곳곳의 도로교통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날 아침에 맞이한 마당풍경은 남극이라도 된 듯 온통 백색이었다. 3살배기 진돗개들은 처음 본 눈보라에 놀랐는지 제 집에서 꼼짝 않았다. 예상치 못한 사태는 ‘움직여야만 했던’ 사람들에겐 사고로 이어졌다.

지역방송은 온통 교통두절과 단전, 동파에 교통사고와 낙상을 조심하라는 내용의 ‘재난방송’으로 채워졌다. 상상할 수 없었던 아니, 상상되지 않는 제주의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온난화로 인해 최근 10여년 이상, 바닷가 마을 집 처마에 고드름 하나를 볼 수 없었다던데 이런 현상은 예상할 수 없었던 사태가 분명했다.

방송은 연신 30여년만의 폭설이라며 호들갑이었다. 제주의 재난모델은 대체로 하계에 발생하는 태풍과 폭우에 대비하는 여름형인데 이런 혹한 속 폭설은 강원도에서나 보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자연은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준비해두었다고 만만해하면 여지없이 ‘자만’을 응징한다. 예상을 벗어난 재난에 당황한 행정당국은 추위와 폭설에 난도질된 제주를 구하려 공무원 총동원령을 내렸다.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고육지책이겠거니 했지만 그들도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서 헌신하느라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효율적이고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펼치기엔 전문장비가 태부족이었다. 폭설 속에서 고립된 차량과 인명을 구조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폭설을 대비한 특수용도 차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수의 민간구조대 활동을 수행한 이들이 있다. 높게 쌓여만 가는 눈길을 헤치고 미끄러지는 빙판을 건너며 중산간 작은 도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끄러지고 고립됐던 차량을 찾아내고 휴대한 견인줄과 거친 타이어 트레드를 큰 바퀴를 지렛대 삼아 4륜구동의 기능을 살린 구조활동이었다.

제주도내 4륜구동 자동차로 자연을 벗 삼아 투어를 즐기던 동호인들이 재난 시 구조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평소 포장된 온로드(On-road)보다는 비포장된 오프로드(Off-road)를 재미삼아 즐기고 인적이 드믄 산속깊이 들어가 캠핑이며 피크닉을 즐기기 위해 세팅했던 레저목적의 튜닝이 비상시 이웃을 돕는 장비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제주는 산과 평지가 뒤섞여 고저편차가 많은 곳이라서 4륜구동 차량의 수요가 강원도만큼이나 많은 곳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비상시 특수목적차량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재난시 자기구난이나 고립을 극복할 수 있는 요령을 익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은 고장시 보험사의 견인서비스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타이어 교체도 편해졌지만 비상시 견인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가견인 혹은 구난탈출의 요령을 미리 익혀두면 매우 유용할 수 있다.

차량이동이 불가능한 상태로 고립된다면 우선, 필요한 몇 가지 생존을 위한 행동요령이 있다. 첫째, 차량의 시동을 끄지 말고 라이트를 켜둔 채 휴대전화로 긴급구난요청을 한다. 둘째, 휴대전화 무선전파가 터지지 않는 곳이라면 비상등을 켜고 지나가는 차량의 도움을 유도하거나 휴대전화가 터지는 곳으로 보행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보행불가의 상황이라면 가능한 차량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 좋다.

지난 20여년간 산악험로주행을 섭렵하며 전문대회에 입상했던 경력의 필자는 도내 4륜구동 자동차 소유자에게 악천후 시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요령을 강의한다. 자기구난요령, 견인요령, 윈치 등 전문장비 사용법, 휴대전화가 통하지 않는 비상시 생활무전기 사용법 등이다.

기초적인 서바이벌(생존)요령을 익혀두는 것은 예상치 못한 재난 등을 이겨내기 위한 준비다. 스스로의 위기 탈출은 물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줄 수도 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탄성을 자아내는 새하얀 제주도의 아름다움도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고 재난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