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선거판 ‘정책’으로 불 지펴야
美대선 예비경선 무명의 샌더스
민심 반영한 경제정책으로 돌풍
드라마틱한 반전 흥미진진 선거
4·13총선 국민공천 경쟁 이슈 없이
인지도 싸움 ‘묻지마’ 투표 우려
후보들 분명한 정치철학 제시해야
선거의 묘미는 의외성에 있다. 이변과 반전은 흥행 포인트다. 별 기대를 걸지 않았던 후보들의 선전은 유권자들의 흥미를 끈다. 극적인 요소는 투표율을 끌어올린다. 그것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 활성화로 이어진다.
최근 미국 대통령후보 예비경선에서 이변의 주인공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그는 지난 9일 뉴햄프셔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전국적 지명도가 낮고 무소속 출신으로 당내 기반도 약했던 그다. 74세 노(老) 정객이 민주당의 주류인 힐러리와 접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둘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선거전에 접어들자 반전이 일어났다. 아직 경선 초반이기는 하지만 샌더스가 의외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샌더스의 선전은 우연이 아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그의 지지율 상승은 ‘부의 재분배’ 경제정책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심을 정책에 제대로 반영했다. 드라마틱한 선거전의 이면에는 정책이 있었다. 선거에 있어 정책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전이 한창이다. 제20대 국회의원을 뽑는 4·13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지난해 12월 15일 시작됐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6일 공천신청 접수를 마감하면서 여·야 정당의 공천 경쟁이 본격화했다. 도내 3개 선거구에는 모두 21명이 공천 신청을 했다. 경선 방식은 양당 모두 당원보다 일반 유권자들의 의사를 더 많이 반영하는 국민공천제가 유력하다. 제주지역의 경우 새누리당은 다자대결, 더민주당은 양자대결 구도다. 여당은 ‘원희룡 마케팅’ 후보들의 본선 진출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야당은 4선에 도전하는 현역 의원들이 공천될지가 관심사다. 이런 약간의 흥밋거리 외엔 이번 당내 경선이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 특별한 이슈도 없이 밋밋한 선거전이 되고 있다.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선거 국면에 돌입하지 2개월이 넘었지만 아직도 분위기는 냉랭하다. 투표할 ‘국민’은 싸늘하다. 후보들만 뜨겁다. 당내 경선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후보들이 이슈가 될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물론 후보들은 정책 보도자료를 거의 매일 내고 있다. 그렇지만 주목을 끄는 정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지역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발표하는 정책을 보면 국민 대표로서의 비전이나 구상은 보이지 않고, 도의원 공약으로 착각될 정도로 지역관련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 그마저도 언론지상에 얼굴과 이름을 알려 인지도를 끌어올려는 목적이 더 많아 보인다.
정치인 어법(語法)대로 하면 국민공천제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준데도 받을 수 없다. 유능한 정치인재 선택에 필요한 정보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후보자 능력이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다. 유권자들이 선거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너무나 미흡하다. 지금의 국민공천제에서는 후보 인지도에 좌우되는 ‘묻지마’ 선거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현역 국회의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는 소리도 나온다. 인지도 낮은 후보는 ‘정책’이 유일한 활로다. 샌더스 같은 극적인 반전을 이루려면 정책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샌더스가 최종적으로 민주당 후보 자리를 차지할 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하지만 승패에 관계없이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에 더불어 살아가자는 논쟁에 불을 붙인 것만으로도 그의 출마는 의미가 있다. 도내 후보들도 분명한 정치철학과 사명감을 갖고 선거전에 임해야 한다. 당락을 떠나 제주사회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화두를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출마 이유가 단순히 ‘얼굴 알리기’나 권력·명예욕에 의한 것이라면 일찍 접는 게 도민에 대한 도리다. 이번 제주지역 4·13총선은 예선에서부터 정책선거의 신선한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