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고 나니 시원하지?

2005-07-13     제주타임스

  일상의 대화에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다하고 나면 시원할 것 같지만 퍼부었던 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중에 올랐다가 내려와 쌓이는 먼지 알갱이처럼 결국 내 가슴에 도로 내려앉아 답답함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더군다나 자신의 뜻과 상관없는 말을 상대방이 해오는 경우에는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해명을 다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있으려니 속이 터지기도 하며 종일토록 일을 손에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내뱉고 있는 ‘말’의 한가운데 노출되어 있다. 대부분 아무 의미 없이 내뱉는 말이 공해가 되어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있는 줄도 모른 체.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남들의 원망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말자. 아니다. 오히려 신나게 흔들려 보자.  정보화 사회가 점점 더 진행될수록 현대인들은 자신의 중심을 상실하게 된다. 중심이 없으니 외부의 자극에 의해 쉽게 흔들린다. 그러한 흔들림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중심이 있으면서 흔들리는 것은 다르다. 그 흔들림은 불안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이 된다. 그네를 신나게 타듯, 시계추가 정확히 흔들리 듯.

  요즘에는 중심이 너무 밖으로 향해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실의에 빠져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단 한 사람도 자신의 힘든 상황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귀중한 생명을 쉽게 버리려고 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역시 뿌리를 자신의 발밑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들 대부분은 자기 자신과의 내면적 대화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외면적 대화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범람하는 잘못된 정보들로 인해서 중심축을 자신의 밖에 두게 된다. 자신의 의지는 간 곳 없고 남의 말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며 중심 없이 방황하고 있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안도현 시인의 시에 <화엄사>가 있다. 이 시의 내용을 보면 오래된 절 안의 한적한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절에는 개 두 마리가 있다. 어찌나 산 속이 조용한지 낮잠을 늘어지게 자던 개가 저 멀리 숲 속에서 다람쥐가 달려가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일어나 절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아무 일 없는 듯이 덜래덜래 돌아온다. 또한 바람이 추녀 끝을 툭 치고 지나가자 풍경이 딸랑딸랑 울리기 시작한다.

  개는 무슨 목적이 있어서 다람쥐를 쫓아간 것이 아니다. 바람 또한 무슨 목적이 있어서 풍경을 툭 친 것이 아니다. 그렇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대화도 이와 같다. 상대방이 아무 목적 없이 그저 해 온 말을 스스로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 자신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마음 안에 중심이 서 있다면 어떠한 얘기를 해오더라도 감정의 흔들림은 있을지언정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신나게 마음의 흔들림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자연에 서 있는 것들은 모두가 중심이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휘어진 나무도, 들판에서 흔들리는 풀들도 오히려 최대로 흔들거리며, 어찌 보면 그 바람을 이용해서 씨앗을 멀리 퍼트리려 신나게 흔들거린다. 반면에 사람들의 경우는 어떤가? 자신을 흔들리게 하는 상대방을 원망하기에 바쁘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아서 갑자기 비를 맞는 경우에 하늘에다 화를 심하게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우산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유독 대상이 사람이면 이상하게 사람들은 화를 낸다. 상대방이 내게 무슨 말을 하든지 자연을 대하듯 받아들여보자. 내게 바람이 불어오듯 비가 내리듯이.

  누군가가 내게 화를 내며 말을 할 경우 신경질을 내는 대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내게 그렇게 말하고 나니 시원하지?”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도 흔들의자에 앉아 흔들리면서도 평화로운 자신을 발견함과 동시에 상대방은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연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