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도정과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2016-02-10     김철웅

진정성 왜곡 전달되며 오해 발생
조상들 ‘오비이락’ 상황 경계
오해 차단 지침은 ‘이하부정관’

일부 총선 후보들 ‘지사 마케팅’
지사에겐 관련 ‘설’ 자체도 불명예
남 말고 후보 자신을 마케팅 해야

가정은 물론 사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화두는 소통(疏通)이 아닐까 한다. 거의 모든 문제의 발단이 소통의 부족 또는 부재이기 때문이다. 10대 아이들의 반항과 가출은 물론 연인간의 이별, 부부간의 충돌, 고부간의 갈등도 원인은 소통의 오류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평화를 약속 해놓고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백성’들이 굶어죽어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국가의 의무인 ‘누리과정’ 예산이 없어 보육대란이 예견돼도 천문학적 비용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사들이려 하고 있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완전한 소통이 이뤄지지 못해 서로의 진정성이 전달되지 못 하거나 말로는 하는 데 행동이 믿기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결국 진정성이 왜곡 전달되면서 오해(誤解)를 사고 만다. 진정성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오해는 쉽게 발생한다. 한바탕의 충돌 이후 잘해 보자며 던지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오해를 야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이후 아무리 진정성을 강조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오해’를 경계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했다.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지는 격으로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합리적인 오해를 살 개연성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에 대한 경고다.

그리곤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을 강조했다. 합리적 오해를 차단하기 위한 행동 지침이다. 자두(오얏)나무 밑에서 갓 끝을 고쳐 매는 게 남이 보면 자두를 따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오비이락과 이하부정관을 ‘의도적으로’ 즐기는 부류도 있다. 정치인들이다. 자기가 하지 않은 것도, 자기가 한 것처럼 홍보하곤 한다. 지역에 무슨 예산이 배정되면 마치 자신의 노력 덕분에 100% 성사된 것처럼 내세운다. 배는 건들지도 않았으면서 자기가 배를 딴 것처럼 하는 ‘정치 쇼’다. 실은 갓 끈을 고치려했을 뿐이었으면서 자두가 생기니 “그렇지 않아도 자두를 따려 했다”는 식이다.

그러다 오해를 자초, ‘큰 코’를 다치기도 한다. 이른바 ‘OOO게이트’나 ‘OOO스캔들’처럼 영광스럽지 않은 사건에 연루돼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며 곤욕을 치르는 경우다. 수사결과 혐의는 벗는다 하더라도 ‘같은 부류’로 분류, 도매금으로 평가 절하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하부정관이다. 그런데 원희룡 도정에서 오해를 자초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오는 4·13 총선과 관련, 일부 후보들의 ‘원희룡 도지사 마케팅’을 용인하고 있어서다. 상대편 후보 등에선 관련 의혹도 제기하고 있으나 물증이 없으니 ‘설(設)’일 뿐이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다. 도지사도 정무직 공무원이다. 그렇다면 중립을 지켜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중립의 의무가 요구되는 제주도 공무원 가운데 최고의 자리에 있는 도지사라면 더욱 그러해야할 것이다.

각종 ‘설’ 자체만으로도 정치적 중립 의무의 지사에겐 불명예다. “그들이 그러는 걸 말릴 수 없다”는 건 핑계다. 강력히 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 그들을 핑계로 한 ‘원희룡 마케팅’ 무임승차는 옳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당선이 되면 원 지사와 협력, 제주도정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한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당선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누구든 국회의원이 되면 제주도정과 같이 협력해야할 사람들이다.

오비이락처럼 서귀포시 고위공무원과 원 지사 사진을 크게 내건 예비후보가 동일 행사장에 나타나는 ‘우연’도 제보되고 있다. 지난 1월 원 도정의 ‘파격적 인사’ 배경으로 ‘4·13총선’을 지목하는 공무원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선거개입 같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도민 화합을 주도해야할 도지사가 편 가르기 양상 속에 이하부정관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원희룡 마케팅을 하는 후보들이 스스로를 마케팅해야 한다. 친구들과 싸우다 ‘형님을 데리고 온 초등학생처럼’ 남에게 기대지 말고 자신만의 공약과 정치철학으로 승부해야 한다. 조상들은 이하부정관을 강조하며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