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제주’를 기다리며

2016-02-02     김은철

제주 경제 외견상으론 활황
부동산·인구유입·관광객 등 영향
선량한 도민에겐 ‘고통’ 되기도

소외된 사람들 상대적 박탈감
‘느림의 미학’ 제주지향점 기대
자본 아닌 도민 행복한 개발돼야

2016년 병신년 새해가 밝은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며칠만 있으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다. 설 명절맞이 귀향을 기다리면서 고향 제주도의 소식에 관심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달 말에 내린 32년만의 폭설은 제주도를 온통 순백의 섬으로 만들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눈이 너무 많이 내리면서 제주가 고립되는 사태가 발생, 제주를 찾았던 많은 이들의 발목이 꽁꽁 묶여버렸다. 이 소식은 ‘육지’ 사람들에겐 단연 톱뉴스가 되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신년 벽두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 많던 눈들도 며칠 후 비에 전부 녹아버렸다고 한다. 이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정든 제주도의 고향집을 그려본다.

최근의 제주도는 활황인 것 같다. 내부의 문제는 차치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과 순유입 인구의 증가, 건축허가 면적 증가 및 새로운 개발계획 등으로 인한 건설경기 활성화, 관광객 증가 등 일단 외견상으론 그러하다.

제주의 땅값은 제2제주공항 건설과 새로운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개발부지 인근은 물론 도 전역의 토지가 전국 최고의 상승률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제2제주공항 건설 관련 시설 및 주변지역 개발계획 등 장밋빛 청사진에 대한 기대감이 부동산 광풍이 되어 나타난 결과다.

또한 국내외의 관광객들과 ‘인생 2모작’의 최적지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기업 유치 및 이전에 따른 수많은 인구의 제주 유입은 건축 등 건설경기 활성화를 이끌며 아파트와 주택가격의 급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외의 불안한 정세와 성장률에 대한 비관적 예측과 달리 제주도는 무서울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 고향 제주도를 바라보는 필자는 제주도민이 희망하고 계획한 대로 변화가 진행되길 바라며, 적절하고 합리적인 대책이 수립돼 있는지 정책 당국에 묻고 싶다.

제주도의 개발정책은 ‘균형 있는 개발과 지속적 발전’이라는 명분에도 불구, 선량한 제주도민들을 정신적 갈등과 심적 고통을 주는 경우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금만 지나도 급변하는 개발계획과 이에 따른 이해자 간의 대립과 분쟁, 하루가 멀다하고 폭등하는 부동산은 각자의 직분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우리네 고향사람들을 혼란과 분열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난개발과 대단위 토지매매 성사 소식 등은 조용하고 정겹던 동네를 들쑤시며 공동체를 위협한다. 엄청난 자본과 정보력을 가지고 무차별 개발만을 주도하는 외부의 악덕 투기꾼들은 현행 법망을 비웃기나 하듯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제주도를 휘젓고 다니며 그들만의 세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개발 대상에서 소외된 주변 마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상실감과 허탈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예로부터 제주도는 외부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제주섬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채 빠르진 않지만 지속적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그리고 제주만이 가진 천혜의 자연경관은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제주도를 찾고 있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몇 곳 남아있지 않는 귀중한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너무나도 급격한 과학의 발전과 개발의 틀 속에서 대두되고 있는 ‘느림의 미학’이 제주의 지향점이어야 한다. 우리의 고향 제주는 이제 자연과 느림의 미학이 있는 치유의 섬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보존되어야 한다.

신년초 제주도를 강타한 한파와 폭설 같은 자연적 재해상황은 섬을 마구 흔들어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지만, 한편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역경을 극복해서 이겨낼 수 있는 단합의 힘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내는 작금의 제주도의 난개발 및 급격한 부동산 폭등과 같은 인위적 재해상황은 오히려 사람들을 황폐화시키고, 반목하게 하여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한다. 이에 인위적 재해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직시, 자본이 아니라 도민이 행복한 개발을 정책당국에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