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27명에 ‘새 삶’ 주고 떠난 천사
제주 출신 19세 김유나 양 미국서 교통사고로 뇌사
심장·신장·피부·뼈 등 장기 기증···다음달 장례 미사
항공사 승무원을 꿈꾸던 밝고 착한 소녀였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한 외할머니를 6개월 간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간호사들이 보호자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소녀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유난히 좋아해 성가대 합창단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랬던 소녀가 미국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아 결국 ‘천사’가 됐다.
제주 출신 10대 소녀가 멀리 이국 땅에서 장기 기증으로 전 세계 각국 27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하늘 나라로 떠났다. 고 김유나(19)양의 이야기다.
김양은 제주에서 노형초등학교와 아라중학교를 졸업한 뒤 2014년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크리스찬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한창 하고 싶은 것 많은 나이에도 유학길에 올랐던 이유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해 승무원이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여길 무렵,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21일 오전 1시 등굣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종사촌 언니가 운전하는 차량이 교차로에서 과속하는 가해 차량과 충돌했다. 사고 당시 앞좌석에 있던 언니와 함께 유학 생활을 하던 여동생(17)은 에어백이 터지면서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뒷좌석에 타고 있던 김양은 심각한 뇌출혈 증세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사흘 뒤인 지난 24일 새벽 2시43분 뇌사 판정을 받았다.
사고 소식에 꼬박 하루 비행기를 타고 병원을 찾은 김양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주변의 빛이 되고자 했던 딸의 뜻을 존중해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천사’같이 착한 딸도 분명 좋아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김양은 평소 ‘하느님의 도우미로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유나양이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첫 복사(사제의 미사 집전을 보조하는 역할)를 선 후 쓴 일기에는 신심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복사를 섰다. 실수를 할까 상상했지만 생각해 보니 안 틀린 것 같다. 내가 만약 하느님의 도우미가 되면 천사처럼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가 천국에서 하느님이랑 지낼 것인데, 제가 죽으면 지옥에 가나요? 천국에 가나요? 하느님 사랑해요···”
김양은 26일 심장, 폐, 간, 췌장, 안구, 조혈모세포, 신장, 피부 일부, 혈관 일부, 뼈 일부, 신경 일부 등을 기증했다. 심장 등 장기는 7명에게, 피부 등 조직은 20명에게 기증된다. 다만 유족의 뜻에 신장은 어린 꼬마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의 장기와 조직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 내 장기기증협회를 통해 가장 적합한 기증 희망자에게 전달된다. 미국의 경우 장기 기증 시 미국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병이 중한 정도에 따라 기증 대상자를 결정하고 있다.
김양의 이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유나가 승무원이 돼 전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했는데 이렇게 자신의 꿈을 이룬 것 같다”며 하염없이 흐느꼈다. 김양의 가족들은 미국 현지에서 화장한 뒤 다음달 6일 제주시 노형성당에서 친지와 친구들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 미사를 치를 예정이다.
한편, 유나양의 어머니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너를 보니 오열을 안 할 수가 없구나. 내가 너 대신 누워 있으면 좋으련만. 유나의 심장이 다른 이에게 이식되면서 숨을 쉬겠지. 그래도 어딘가에서 유나가 숨 쉬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쁠 거 같다. 이제 유나를 천국으로 떠나 보내야 할 시간이 돌아왔구나. 사랑한다 유나야···”라며 애절한 심정을 전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