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눈 속 고사리가 푸르른 이유
‘지하 비밀’ 간직 곶자왈 지켜가야
제주의 ‘허파’ 수자원에도 절대적
땅속에서 애벌레로 5년 이상 지내다가 정작 땅위로 나와서는 한 달밖에 살지 못하는 매미의 일생을 두고 불쌍하다든가 측은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자의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땅 속의 생활은 어둡고 괴로울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며 오히려 땅속은 새나 다람쥐 심지어 말벌 같은 천적들로부터도 안전하고 먹을 것도 풍부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땅 속의 세상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합니다.
한 겨울의 곶자왈 숲. 눈 덮인 땅 위에 고사리가 푸른빛으로 자라고 있는 것을 봅니다. 땅속의 따듯한 공기 덕분입니다.
여름철 아주 무더운 날 곶자왈 숲에 들어서면 냉장고 문을 열 때와 같이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곤 합니다. 그것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한 땅속의 공기가 곶자왈의 바위 층을 통해 지상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곶자왈지대를 제주도의 숨골이라고도 부릅니다.
곶자왈은 공기뿐 아니라 물도 품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연평균 강수량이 전국 평균에 비해 월등하게 많습니다. 특히 성판악 이상의 고지대는 연간 4000㎜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합니다. 우리 제주 섬에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곶자왈은 그 빗물을 지하로 빨아들이는 주된 창구가 됩니다.
제주도의 먹는 샘물 삼다수를 높은 산속의 약수 물로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삼다수 공장이 위치한 조천읍 교래리의 고도가 해발 400m를 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파이프를 통해 끌어 올리는 삼다수의 수원은 해발 20m에서 70m 사이의 매우 낮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자연환경보호를 위해 동식물의 생태 또는 눈에 보이는 경관 이외에도 수자원 보호 측면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통기성(通氣性)뿐 아니라 투수성(透水性)이 높은 곶자왈은 수자원 보호를 위해서는 치명적인 곳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곶자왈을 ‘藪(늪 수)’라는 명칭으로 고지도에 표시했습니다. 용암이 부서져 바위 층을 이루고 있는 곳이 한라산 높은 곳에는 없을 리가 만무하지만 중산간에서 해안에 걸쳐 사람 사는 마을 가까이에 있는 것만을 굳이 수(藪)라는 이름을 붙여 구별하였습니다.
멀리 산속에 있는 곶자왈은 그저 산(山) 또는 림(林)일 뿐입니다. 마을 가까이에 있어 장래에 훼손될 가능성이 큰 숲과 산속 깊은 곳에 있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숲을 구분하였던 조상님들의 지혜를 엿보게 됩니다.
프랑스가 세계에 내놓고 있는 ‘에비앙’ 생수병에는 ‘1826년부터 생산’해 왔다는 문구가 자랑스럽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삼다수의 역사는 20년에 불과한데 앞으로 200년 후까지 그 물맛이 변함없어야 한다는 과제가 만만치 않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에는 제주도민뿐 아니라 제주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포함됩니다. 섬에서 물은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는 25일은 제주특별법 제5차 개정안이 법률로 시행되는 날입니다. 대한민국 법률에 처음으로 곶자왈의 정의와 국가의 보전 필요성이 언급되는 뜻 깊은 날이기도 합니다.
곶자왈은 2012년 제주도에서 개최된 세계자연보전총회(WCC)를 계기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어(wikipedia)에서 ‘곶자왈(Gotjawal)’을 검색하면 여러 페이지에 걸쳐 곶자왈의 특성과 가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곶자왈 숲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바위투성이의 숲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땅 속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밀이 있기에 곶자왈의 사시사철은 이토록 아름답고, 곶자왈공유화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성도 그래서 더욱 고맙고 위대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