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평화로운 상태여서는 안 된다 

2016-01-12     이민경

전쟁범죄 ‘위안부’ 협상 실패작
진정한 해결 위해 목소리 내야

‘서럽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렇다. 정말로 제주는 서럽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 서러움의 흔적은 제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주 4·3의 흔적과 강정마을에서 지속되고 있는 갈등을 비롯하여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미군의 본토 공격에 대비해 구축해 놓은 진지동굴까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엔 아직도 생채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러한 생채기가 남아있는 제주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이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20만명으로 추산되는 어마어마한 수의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짓밟혔고, 제주 또한 그러한 아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제주 땅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군 기지·격납고·벙커 등이 이를 증명한다. 더하여 일본군 ‘위안부’라는 실체가 처음 알려진 장소 또한 바로 이 곳, 제주다. 당시 일본인들의 기생관광에 대하여 반대운동을 펼치던 여성단체가 주관한 세미나가 그 계기였다.

故 김학순 할머님께서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강제 동원 피해 사실을 세상에 처음 공개한 지 벌써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피해 사실을 정부에 밝힌 분들 중 현재 살아계신 생존자는 단 46명. 야속한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간다.

2015년은 광복을 맞이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자 한국과 일본이 수교를 맺은 지 50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사회의 25년 역사가, 한·일 양 정부의 ‘야합’으로 간단히 부정된 해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28일에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은 ‘실패작’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요구인 일본정부의 직접적·공식적 사과와 법적 책임이 전제된 배상, 그리고 전쟁범죄에 대한 재발방지 약속과 올바른 역사 기술까지 그 어떠한 것도 담보해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역사가 담긴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의 철거 및 이전을 요구하고 있어,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더해 이미 25년째 피해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한국정부는 협상이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임을 확인함으로써, 피해자들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위안부’ 문제를 단순한 한·일 양 국가 간의 외교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쟁이라는 가부장제적 시스템 아래, 수많은 여성들의 인권과 존엄성이 처참하게 짓밟힌 전쟁범죄다. 따라서 이번 한일‘위안부’협상은 인류보편의 가치인 인권보다 서로의 외교적 이익만을 좇은 졸속적이고 무책임한 협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끝나도 물에는 오염물질이, 땅에는 지뢰가,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남는다. 폭력은 한 순간이라고 하지만 폭력으로 입은 상처를 낫게 하려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싸움 때문에 다친 사람의 상처를 모두가 알아가는 것이 평화를 만드는 길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의 말이다. 여기에 답이 있다. 피해자의 상처를 모두가 알아가며 평화를 만드는 것. 한·일 ‘위안부’ 협상 발표 이후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달려가 느꼈던 서울의 분위기와, 지금 제주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다르다.

평화는 평화로운 상태여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문제가 공유되고 약자의 고통이 가시화되며, 그것이 공감으로써 분담되는 ‘시끄러운’ 상황이 평화다.

제주가 ‘평화의 섬’이라는 타이틀을 단 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앞서 언급했 듯 서러움과 아픔의 흔적들은 곳곳에 묻어있으며, 여전히 평화의 목소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모두가 함께 그 평화의 목소리를 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