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동력 위한 산업입지정책 필요
제주 발전 모델 싱가포르
제조업 기반 물류·금융 동반 발전
성공 열쇠는 충분한 산업단지
도내 조성 산업단지 고작 3개소
면적도 전국의 0.19% 불과
산업용지 합리적 배치 이뤄져야
얼마 전 싱가포르를 처음 다녀왔다. 제주국제자유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제주의 발전모델이기도 했던 싱가포르이기에 나름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방문 목적이 따로 있었고 기간이 짧아 여유는 없었지만, 산업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자 했다.
막연히 국제자유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금융·관광·물류 등 서비스산업의 발달로 선진국에 진입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알게 된 것은 2000년부터 제조업 육성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됐다는 사실이다. 이미 1990년대 초에 선진국으로 들어섰던 싱가포르는 성장률 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M2000계획’을 수립해 제조업 성장률을 연 7%이상, GDP에서 제조업 비중을 25%이상 유지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물류·금융 등 서비스업도 동반 급속한 성장가도를 달렸고, 현재 제조업 비중은 27%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싱가포르 제조업 육성 기반이 된 것은 충분한 산업단지 조성이었다. 싱가포르 면적이 제주면적의 5분의 2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주롱도시공사가 중심이 돼 주롱산업단지·비즈니스파크·사이언스파크 등 30여개의 산업단지를 공급 관리하고 있다.
제주는 오랫동안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했음에도 지금까지 산업단지를 조성·공급하는 산업입지정책은 영 딴판이다. 우리나라 전국곳곳에 과도할 정도로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제주에는 지금까지 산업입지정책이 제대로 추진됐던 적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전국에 1098개의 산업단지가 조성됐지만 제주의 산업단지는 계획돼 있는 제2첨단과학단지·도시첨단산업단지 2개를 포함해도 7개에 그치고 있다. 조성된 곳은 농공단지와 첨단과학단지·한동용암해수단지 등 3개뿐이다. 조성 면적 역시 전국 총면적 1376㎢의 0.19%로 전국 평균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전국 최소 수준이다.
10년 남짓 필자에게 제주와 관련된 화두가 있었는데, 그것은 ‘지역경제의 문제는 산업의 문제’였다. 제주의 산업구조는 어떻고, 산업구조의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 것인가 등 나름 고민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제주산업구조는 관광 등 3차산업의 비중은 더욱 커지고 제조업 비중은 3% 내외에 불과하다. 많은 관심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10년 전과 거의 변동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조업의 집적화를 도모할 수 있는 산업입지정책이 제대로 추진돼 왔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단언컨대 산업입지정책의 소홀함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전국의 산업단지에는 미분양면적이 26.6㎢가 남아 있을 정도로 기업들이 입지할 공간이 수두룩한데, 제주의 기 조성 산업단지에는 미분양 면적이 전혀 없다. 제주에는 이전기업이나 향토기업들을 집적시킬 수 있는 입주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만해도 산업단지 수급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산업입지정책의 핵심은 산업용지의 원활한 공급과 산업의 합리적 배치에 있다. 100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청정 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인 만큼 기업들이 개별입지에 분산되는 것보다 계획된 산업단지 형태의 집적공간에 입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제에 제주의 신성장 동력을 위한 산업입지정책의 비전과 목표를 수립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제주의 산업구조에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는 열쇠로서의 산업입지정책은 어떻게 그려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요구돼진다. 싱가포르가 아니더라도 이에 대한 선진사례는 많다.
또한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산업단지의 원활한 조성을 위한 대책 마련에서부터 벤처단지·중소기업집단화단지·아파트공장 등 전문화 특성화된 단지개발을 위한 단기처방도 시급하다.
“3년 후 제2첨단과학산업단지가 조성될 터이니 기업을 이전해달라”는 앞뒤 안 맞는 기업유치활동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답답하다. 산업단지 자체가 브랜드화되고, 공동체와 도시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제주에도 랜드마크적인 산업단지가 조성될 날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