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 이루고 대학생활도 즐기게 돼 너무 행복”
[고졸취업 전성시대] <2> 제주지역 특성화고 학생들의 저력
특성화고 학생 한가하단 생각은 옛날 이야기
전세계서 기능 겨루기 위해 저마다 고군분투
대학 or 취업…꿈 다르듯 길도 다른 게 당연
▲한림공고의 '기대주'들
최근 몇년 한림공고(교장 장문일)에 기능 인재의 저력을 과시한 낭보가 잇따르고 있다.
한림공고 이승엽 군(20)은 지난해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통신망분배기술 부문 금상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 8월 국가대표로 출전한 브라질 상파울루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수상에 선정, 상금 1000만원과 산업포장을 받았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스포츠계의 세계 올림픽에 비견된다.
국가를 대표해 세계 기능인들과 실력을 겨룬다는 것 자체도 영광이지만 금메달의 경우 동탑산업훈장과 6720만원의 상금, 국가기술자격 산업기사 자격시험 면제, 병역대체복무(산업기능요원 편입), 대학진학자 장학금 지급, 기능장려금 지급 등 관련 진로에 필요한 많은 실질적인 혜택을 확보할 수 있다. 때문에 기능반 학생들은, 인문계고 학생들이 수능을 준비하듯 기능경기대회 준비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루빨리 취업 하고파 선택한 학교
올해 졸업한 이승엽 군은 이러한 쾌거를 인정받아 현재 울산 삼성SDI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실 이 군은 중학교 친구를 따라 우연히 한림공고에 지원했다. 기술을 익혀 취업을 하자는 말에 끌렸다. 입학 후 학과설명회에서 기능반에 대해 듣고 가입, 전국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게 됐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아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질 좋은 취업' '기술 향상'의 꿈을 가진 학생들은 교과수업과 기술수업을 병행해야 해 더 바쁜 날들을 보낸다.
이 군의 학창시절도 자유롭지 않았다.
"대회를 준비할 때 하루 일과는 엄청 단순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등교하고 기능반실로 가 그날 해야할 과제의 자재들을 준비한 뒤 훈련을 시작해요. 저녁이 되면 마치고 집에가서 자고 아침이면 다시 학교로 가는 이런 생활을 3년간 반복했어요."
고3이던 지난해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에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게 노력의 결과인가'였다. 그만큼 오랜 시간 단순한 일과를 끝없이 반복하는 지루함을 견뎌냈다는 뜻이다.
현재 이 군은 울산 삼성SDI에서, 공장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문제점이 발생하였고 어떻게 대처해야하는 지를 알려주는 운영업무를 맡고 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한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참가를 위해 지구 반대편 브라질 상파울루로 날아가 우수상을 받고 2주를 보냈던 추억은 자랑스러운 성취의 기억으로 이 군의 삶에 또렷히 자리잡았다.
이 군은 전화 인터뷰에서 "입사를 하고 몇 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대학에 가고 싶다거나 너무 이른 나이에 취업했다는 생각은 없다"며 "오히려 후배들에게 취업과 군대는 되도록 빨리 시작하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고 전했다.
선배의 승전보는 그대로 후배들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지난해 이승엽 군에 이어 지난 10월 초 울산에서 펼쳐진 제50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는 이 군의 후배들인 한림공고 백재영, 양우성 군이 역시 같은 통신망분배기술 직종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림공고는 지난 2009년(은메달, 동메달), 2010년(은메달), 2011년(금메달, 동메달), 2014년(금메달, 동메달)에도 전국기능경기대회 동 직종에서 메달을 획득하며 최고의 기량을 전국에 알렸다.
▲제주지역 계속되는 낭보들
특성화고 학생들의 취업 소식도 계속 전해지고 있다.
한림공고 기계과 양혁진 학생이 지난해말 삼성전자 첨단기술 연구소에 합격한 것으로 비롯해 재학생 10명이 삼성전자, 삼성SDI, 현대중공업, 하이닉스, 부영주택 등에 합격했다.
야무지기로 소문난 제주여상(교장 정경애) 학생들은 최근 '금융권의 꽃'으로 불리는 한국은행에 1명 입사를 비롯해 농협은행, 새마을금고, 삼성증권 등 금융계에 7명이 취업했고, 한국전력공사와 공무원 연금공단 등 공기업에도 3명이 입사했다.
세무사사무소 2명, 회계법인 3명, 국제손해사정 제주지점 1명 등 학교에서 배운 회계 관련으로 6명이 합격했고 JDC 면세점, 제주항공, KTcs제주사업단, 도내 호텔 등에 30여명이 새내기 직원으로 이름표를 달았다.
특히 제주여상은 지난달 충남 논산에서 열린 제5회 전국상업경진대회에서 금융실무, 세무회계실무 종목에서 금메달 2개 등 총 메달 4개와 특별상 17개를 수상하며 전국상업경진대회 참가 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제주여상 학생들의 분투에 보답하듯 이석문 교육감도 최근 열린 제주도의회 정례회 교육행정질문에서 제주여상을 명문 서울여상처럼 만들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밝혀 특성화고의 성장에 또 하나의 기대를 품게 했다.
▲분투하는 학생들
현재 제주지역에는 30개의 고등학교가 있다. 이 중 특성화고는 제주고(가사·실업), 제주여상, 한림공고, 한국뷰티고(가사·실업), 중문고(가사·실업), 서귀포산업과학고(농생명산업) 등 6곳이다(이외 함덕고, 성산고, 제주중앙고, 영주고는 대학 진학을 위한 보통과가 설치된 일반고 형태임).
앞서 열린 2015 전국기능경기대회에는 도내 특성화고 5개교에서 28명이 14개 직종에 출사표를 냈다.
서귀포산업과학고 학생 6명이 자동차자체수리, 자동차페인팅 등의 부문에 도전, 이중 양청원 학생이 학교 최초로 건축(목공) 분야(지도교사 강정윤)에서 입상해 제주지역 학생들의 가능성을 넓히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처럼 전공에 맞는 자격증과 대회를 준비하며 모두 바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제주지역에 유난히 강한 인문계고 선호 현상이 아직 부모와 이웃들 사이에 뿌리깊게 남아 있지만, 상당수의 학생들이 관성적인 대학 진학보단 취업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 구슬 땀을 흘리고 있다.
올 2월 제주여상을 졸업해 공무원 연금공단 공채에 합격, '선 취업 후 진학'으로 제주대 경영학과 야간에 재학 중인 강미앙 씨는 지난달 제주도교육청 주최로 열린 '고졸취업 성공시대 설명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후 5시, 유연근무를 마치고 학교로 달려가면 숨이 가쁘기도 하지만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대학생활도 즐기게 돼 너무 행복하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불안과 외로움, 두려움이 있지만 인문계고를 진학해 대학에 들어가는 길을 모든 청소년이 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 계획과 꿈, 재능에 따라 나의 길을 만들어 걸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