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계속 달리고 싶어요”
제주매일-초록우산어린이재단 ‘키다리아저씨’ 캠페인 (9)
유리 강박증 엄마, 생후 6개월에 헤어진 아빠 등 상처 불구
멀리뛰기 선수로 희망 찾기 나선 6학년 성현군
36세에 생후 6개월된 성현(가명, 13세)이를 안고 엄마는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동두천 문산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했는데 가게가 잘 안 돼 경제적 압박이 심했다. 아이 아빠와도 헤어진 상태였다.
제주로 온 후 친정에 잠시 머물렀지만 곧 모자원으로 들어갔다. 시선이 불편했다. 이 때부터 모자(母子)는 세상에 유일한 동지가 됐다.
그런데 아빠와 헤어지면서 상처가 컸던 엄마에게 트라우마가 생겼다. 유리 강박증. 조각난 유리를 보면 무서워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 정도였다.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갈 수 없었고 외출 자체를 꺼렸다. 자연, 성현이도 집안에서 길러졌다.
엄마의 불안정한 정서는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성현이는 신경질이 잦고 또래 관계가 원만하지 못 해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에는 선생님의 권유로 심리치료와 미술치료를 장기간 받기도 했다.
마음 아픈 일이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자신이 만든 일들이 아이에게 상처만 주는 것 같아 미안했다. 어린 아기를 품에 앉고 제주로 건너올 때도 이렇게 막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담당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우연히 시작한 운동이, 아이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 때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육상을 시작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아 성현이는 학교 대표로 도민체전에 출전, 멀리 뛰기와 80m 달리기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다.
성현이는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짜증이 줄었고 자신감이 생기자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얼굴이 밝아졌다. 그것을 성현이는 스스로 '희열'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하지만 엄마의 걱정은 다시 시작됐다. 이렇게 아이가 좋아지고 있는데 내가 과연 아이를 끝까지 뒷바라지 할 수 있을 지 자꾸 자신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당장 운동복과 운동화부터 넉넉히 사줄 수 없다. 기능이 들어간 고가의 스파이크들은 몇 개만 사고나면 엄마의 한 달치 급여가 된다.
"뭐든 해주고 싶지만, 또 나중을 위해서 아끼고 아껴야 하는 게 엄마의 입장인 것 같더라고요.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죠."
성현이는 중학교 진학 후에도 계속 운동을 할 생각이다. 출발선에서 '땅'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오직 자신과의 싸움.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추고, 잠시 후 들려오는 환호와 친구들의 미소. 어쩌면 성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바라본, 타인의 눈빛은 아닐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 말이다.
12년전 엄마는 젖먹이를 안고 제주로 오며 다짐했다. 아이에게 언제나 든든한 '산타클로스'가 되어주겠노라고. 모자의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 후원=064-753-3703(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주지역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