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자

2015-11-05     한국현

노지 출하 첫날부터 ‘양심불량’
가격 하락 농가자존심 붕괴
원 도정 감귤개혁원년 무색

지난 2일 긴급 감귤반상회
그래도 비웃듯 비상품 유통
가격 상품만 출하하면 되는데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꼭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나쁜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무슨 심보인지 기어코 일을 저질러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비상품 감귤을 유통하는 사람들이다. 해마다 노지감귤이 출하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해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면서 감귤의 이미지를 훼손시킨다. 감귤가격을 떨어 뜨리는 것은 물론이다. 행정이 ‘제발 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눈에 불을 키고 비상품 감귤 유통행위를 단속하고 있지만 적발 사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해산 노지감귤이 처음으로 도매시장에 선을 보인 지난달 6일은 비상품 감귤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날이다. 이날 새벽 서울 가락동 경매시장에 출하된 올해산 노지감귤 19t 가운데 70% 이상이 강제로 착색된 비상품 감귤로 확인되면서 망신을 당했다. 당시 현장에는 단속 공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지도,감독에 나섰던 도내 모농협조합장이 긴급 경매중단을 요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출하 첫날부터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비상품 감귤은 계속 유통되면서 행정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제값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농가에는 찬물을 끼얹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비상품 감귤 유통행위가 사라지지 않자 강력한 대응 의지를 피력했다. 원 지사는 지난달 20일 주간정책회의에서 강도 높은 단속과 규정에 따른 철저한 행정집행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비상품 감귤이 적발된다는 것 때문에 감귤 혁신의 빛이 바래지는 것이 아니다. 아프지만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수술할 때 우리가 고품질 감귤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제값 받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원 도정이 공표한 제주감귤 혁신의 원년이다.

비상품 감귤은 행정의 강력 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통되고 있다. 제주도와 행정시는 2회 이상 비상품 감귤을 유통하다 적발된 선과장에 대해서는 품질검사원을 해촉하는 등 사실상 운영을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적발된 농가와 개인, 업체 등은 향후 행·재정 지원에서 배제하는 등 초강수를 두고 있다. 비상품 감귤 유통 현장이나 사례를 제보한 사람에게 최고 50만원까지 주는 신고 포상제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비상품 감귤을 유통하다 적발되는 사례가 계속 나타나면서 가격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말에는 10㎏당 가격이 감귤농가의 자존심 가격인 1만원대가 무너지기도 했다. 감귤혁신 첫 해부터 가격이 하락하면서 비상이 걸린 것이다.

사정이 이러자 제주도는 지난 2일 ‘긴급 반상회’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감귤유통과 관련한 긴급 반상회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긴급 반상회에는 도내 농·감협 선과장 177개소 관계자와 농가, 사무관 이상 간부 공무원 등이 참석했다. 도는 이날 선과장과 농가 등에게 다 익은 완숙과 2~3회 분할 수확, 강제착색 출하행위 및 비규격 출하 금지, 소비시장 수급상황을 고려한 출하 등을 강력히 요구했다. 또 도매시장과 항만 등에 단속 공무원과 비상품 감귤을 배치해 비상품 감귤 유통행위를 뿌리뽑겠다고 했다.

긴급 반상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상품 감귤 유통행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감귤주산지인 서귀포시지역의 경우 5일 현재 123건이 적발됐다. 유형별로는 비상품 유통이 79건, 품질검사 미이행 37건, 강제착색 7건 등이다. 물량은 192.7t이다. 긴급 반상회 이후 3일 동안 적발된 사례도 3건에 물량은 10.5t이다. 도 전체적으로 비상품 감귤을 유통하다 적발된 사례는 150여건에 이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많은 건수다. 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고 적발되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했는데도 적발되고 있다. 피해는 보는 것은 선량한 농가들이다. 제주도 1차 산업의 핵심이자 생명산업인 감귤의 체면도 말이 아니다. 조생감귤 출하시기가 임박했으나 감귤가격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저장물량을 감안하면 감귤은 내년 3월까지 출하된다. 상품만을 출하하면 가격은 회복된다. 비상품 감귤을 유통하는 행위는 나쁜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