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약’ 누리과정 국가가 책임져야

2015-10-26     박영선

예산부담 교육청 ‘빚쟁이’ 전락
시설개선 및 교육과정 큰 타격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교육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구(警句)다. 아이 한 명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청만의 의지로는 가능하지 않다. 교육청과 가정·지역사회·국가가 힘을 모아야 한다.

‘교육’은 그 자체로 국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생명의 젖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누리과정’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교육의 본질적 방향과 다르게 가고 있어 매우 안타깝고 우려스럽다.

‘누리과정’은 부모의 소득 수준과 계층에 관계없이 대한민국 모든 만 3~5세 유아에게 유아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으로 지난 2012년 시작됐다. 국가가 모든 아이들에게 공정한 교육기회를 보장한다는 취지가 담겼다.

하지만 올해부터 누리과정 예산 전액을 국가가 아닌, 각 지역 교육청이 부담하게 되면서 제주를 비롯한 전국 교육청의 재정 상황에 ‘빨간불’이 켜졌다. 더구나 누리과정 등 증액예산이 월등히 높아진 것과 달리 중앙정부의 교부금이 지난해 보다 줄어들어서 예산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것 이상으로 피부에 느껴지는 재정 압박감이 크다.

제주의 교육 재정은 중앙정부 교부금과 제주도에서 전출하는 지방교육세 등 전입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앙정부 교부금은 특별법에 의거 지방교육재정 보통교부금 총액의 1.57%이며, 규모는 5963억원 정도 된다. 여기에 지자체의 전입금 총액 1800억 원과 그 외 전년도 이월금 등을 합하면 세입 총액은 8000억 원 규모가 된다.

이 중 도내 전 교직원 및 교육공무직 등 인건비가 5500억원(69%)을 차지해 나머지 2500억원(31%) 정도가 유·초·중·고 교육 사업에 투입된다. 그런데 이 중 올해 누리과정 소요예산이 579억원으로 23%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 수치로 계산하면 학교현장 등에서 추진돼야 할 1억원짜리 사업 579개가 중단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본질적인 재정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급한 대로 각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사용토록 했다. 그동안 빚이 없었던 제주교육청 역시 누리과정 예산 부담을 위해 357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누리과정 예산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2016년 624억원에 이어 2017년 이후에도 매년 증가해 사업비의 25%까지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부담하기 위해 또 다시 지방채를 발행한다면 갚아야 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작은 학교 살리기를 추진하는 제주의 실정상 학교 시설개선 및 질 높은 교육과정 운영·인력운용 등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행정자치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명시하는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6년도 정부예산안에는 누리과정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각 지역 교육청의 재정악화 상황을 고려하면 내년에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 자체가 어려워 보인다. 보육대란 뿐만 아니라 국가의 ‘백년지대계’인 교육의 근간이 크게 흔들릴 것이 자명하다.

특히 누리과정 예산은 현 정부의 공약에서 비롯된 만큼 국가 예산으로 집행하는 것이 맞다. 더구나 정부의 뜻대로라면 어린이집 보육료는 교육청이 내고 관리감독권은 지자체가 갖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지방 교육 재정의 어려움을 개선하고, 말 그대로 모든 아이들이 공정하게 ‘누릴 수 있는’ 누리과정의 안정적인 시행을 위해서는 보육예산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지방 교육 재정에 대한 도민사회의 관심도 절실하다. 지금이야말로 ‘소중한 한 명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지역사회가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 더 이상 보육현장에 혼란을 주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