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에 겨울은 오고 마는가

2015-10-22     김철웅

정부 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
‘역사적 전쟁’ vs ‘역사의 퇴행’
역사는 민낯 불편해도 감내해야

추진 ‘투톱’ 아버지의 친일 논란
역사퇴행 문제 떠나 순수성 의심
덧씌운 것 반드시 실체 드러나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조만간 겨울, 하얀 눈이 대지를 덮을 것이다. 일부 눈에 거슬리는 대지의 민낯을 가려주며 온통 순백의 세상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어디가 길이었고 고랑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눈은 녹을 것이고, 그러면 대지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것임을.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지난 12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통합을 위해서”라며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전환을 발표했다. 김재춘 차관은 “가장 많이 채택된 교과서의 경우 북한에 대해 독재라는 표현이 2번 등장한다. 이에 비해 남한은 20번 이상 나온다”며 ‘편향성 문제’를 지적했다.

그런데 통합을 위한 국정화 선언 이후 대한민국의 분열이 시작됐다. 국론이 양편으로 갈리고 있다. 여당은 ‘역사적 전쟁’이라며 찬성, 야당은 ‘역사의 퇴행’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학계도 마찬가지다. 전국 대학 교수들의 국정교과서 제작 ‘불참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제주를 비롯한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물론 문인들도 “역사는 한 줌의 권력에 의해 독점될 수 없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수단체를 중심으로는 찬성이다.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은 “역사교육은 미래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 잘못된 역사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 잘못을 누가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눈에 훤히 보이는 반 병 남은 물을 보고도 ‘반이나!’ ‘반밖에!’ 등 상반된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하물며 역사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주역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당정의 ‘투톱’은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의 아버지 박정희와 김용주는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와 가네다 류슈(金田龍周)라는 창씨개명을 통한 일본식 이름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일본 육사 졸업 후 만주국의 장교로 근무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인으로서의’ 충성혈서와 편지 제출 기록 등이, 일제강점기 김용주 경북도회의원은 군용기 헌납과 징병을 독려하는 아사히신문 기명광고 자료 등이 공개된 바 있다.

그래서 교과서 국정화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다. ‘올바른 역사’가 ‘지나친 사부곡’으로 인해 역사에 덧칠하기가 되지는 않을까에 대한 우려다. 그리고 국정화 발표 이후 ‘두 분’이 갑자기 친해졌다. 새누리당 공천권을 놓고 빚어진 갈등으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더니 이제는 김 대표가 “이렇게 개혁적인 대통령은 앞으로 만나기 힘들 것”이라며 한껏 치켜세우는 등 180도 달라졌다.

역사의 퇴행도 문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국사교과서 국정제는 1974년 박정희 정부가 첫 번째로 전환했다. 유신시대 못지않은 독재의 5공시절에도 검정제였다. 이제 2015년 딸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 역사에서 두 번째로 국정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설득 논리의 부족도 드러나고 있다. 일례로 김재춘 차관이 기존 검정교과서의 ‘편향성’ 사례로 제시한 ‘독재 표현’의 문제도 눈 가리고 아웅 격이다. 8종의 교과서가 남한에 대해 ‘독재’ 표현을 24번 사용한 것은 맞지만 북한에 대해선 ‘독재’라는 말보다 더 부정적인 ‘세습체제’ ‘우상화’ ‘개인숭배’ ‘독재·권력독점’ ‘유일 지배체제’ 등의 말을 119번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지식인의 ‘변절’도 순수성 저해 요인이다. 12일 기자회견 등 국정화 일선에 나섰던 김재춘 차관은 사실 2009년 논문에서 “국정교과서는 독재국가나 후진국가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비판했던 당사자다. 김 차관은 결국 변절에도 불구, 경질되면서 명분과 실리(권력) 모두를 잃고 말았다.

대한민국 역사에 겨울이 올 듯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역사의 동토가 될 수 없다. 깨어있는 국민들이다. 조만간 봄이 오고 눈은 녹을 것이다.

역사는 다큐지 예능이 아니다. 다소 불편해도 감내해야할 ‘민낯’이다. 눈에 거슬린다고 덮거나 ‘포장’해선 안된다. 눈이 아니라 페인트로 아무리 덧씌우기 해도 실체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이데올로기로 포장돼 높게 세워졌던 사회주의 국가 원수들의 동상들도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럽게 민중의 손에 의해 땅으로 떨어졌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