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기쁨 그림으로 표현해요”
‘생활의 기쁨’ 취미 세계 <13>그림책 일러스트
“나는 꼬마 마술사에요. 이 마술봉으로 소원을 이뤄줄 수 있어요. 우리 동생은 악당들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번개맨이 됐어요. 이제 엄마 아빠의 소원을 이뤄줄 차례에요…”
주부 진주희(42?여)씨가 만들고 있는 그림책의 내용이다. 그는 최근 취미활동으로 그림책 만들기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도화지 위에 연필로 작은 여자아이를 그렸다. 그 위로 마법사 모자와 마술봉을 그리자 꼬마 마법사가 됐다. 그리고 악당과 싸우고 있는 소년을 그렸다. 그녀의 아들과 딸이 주인공이다.
진 씨는 “항상 소원을 이뤄주는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딸의 말이 아이디어가 됐다”며 “그림책을 완성해서 딸에게 ‘나의 소원은 그저 네가 항상 밝게 웃어주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다”고 쑥스럽게 말했다.
1일 제주설문대여성문화센터(소장 양술생) 강의실에는 진 씨와 같이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1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날은 그림책 일러스트 강좌가 있는 날이다. 강좌에는 김품창 화백이 강사로 나서 도움을 주고 있다.
수강생들은 서툰 솜씨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나가고 있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부터 애완동물, 농작물 등 이야기의 주제는 수강생 수만큼 다양했다.
이승희(46?여)씨는 자신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그렸다. 이 씨는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던 중 왠지 모르게 집에서 온 집을 헤집고 다니는 강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며 “집에서 노는 모습, 밖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 해안동에서 단호박 농사를 짓는 김정양(46?여)씨는 다 익은 작물을 찍은 사진을 유심히 보며 색연필로 밑그림에 색을 입히고 있었다.
김 씨는 “농사를 지을 때 느끼는 기다림. 그리고 수확의 기쁨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우선은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목표라 글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책 한권이 될 수도 있고, 이 한 장으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림책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기법으로 그리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또 글로 풀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가기는 어렵다고 한다.
김품창 강사는 “미술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풀어나가면 된다”고 수강생들에게 조언했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법한 ‘가족 간의 사랑’을 그리는 이들도 많았다.
양복란(60?여)씨의 작품 이름은 ‘학교 가기 싫어요’.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싫어 실랑이를 벌이는 손녀의 이야기다.
양 씨는 “나이가 있다 보니 한 장을 완성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훗날 손녀에게 선물할 생각에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학교에 가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 친구들을 만나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려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조금 특별한 가족에게 그림책을 선물하기 위해 작품을 만드는 이도 있었다. 출산을 1주 앞둔 김지영(33?여)씨는 태교를 위해 그림책 일러스트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 구성은 독특했다. 한 쪽에 여성의 모습이. 한 쪽에는 뱃속에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김 씨는 “내가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같이 맛있는 것을 먹고, 운동할 때 함께 운동하고 그렇게 뱃속에 있는 아기가 나와 함께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며 “곧 태어날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고 뿌듯해 했다.
김품창 강사 인터뷰 - "아이들 상상력 기르는 데 도움"
-누구나 그림책을 만들 수 있는가
당연하다.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것은 미대생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그림책은 창작의 산물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울 뿐이지,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실제 수강생 중 한 주부는 그림책 일러스트 수업을 계기로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글과 그림의 조화를 신경 써야 한다. 글과 그림이 따로 논다면 그림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해진 기법이 있는가
그림책 일러스트의 기법은 따로 없다. 수채화, 아크릴화, 크레용화 등 어떤 기법으로든 표현할 수 있다. 심지어 연필 하나만으로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도 있다.
이처럼 어떤 미술 재료로도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내비치는 감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독자들의 연령층은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던 책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요즘 들어 그림책 특유의 ‘감성’ 때문에 그림책을 찾는 성인들도 많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는 것을 통해 상상력을 기르고, 어른들도 과거의 감성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대외활동을 하는 것이 있다면
그림책 일러스트 강의는 2010년 개설됐다. 그리고 매년 수강생들의 작품을 한 데 모아 그림책 전시회를 연다.
최근에는 단순한 전시 뿐 아니라, ‘제주’를 그림책으로 담은 주제 전시회도 기획하고 있다.
또, 그림 일러스트를 칼럼이나 소설에 무료로 제공하는 ‘일러스트 봉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