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 강요하는 ‘긍정의 배신’

2015-09-30     김영환

3포·5포·7포세대 이어 ‘헬조선’
고통 받는 청년들의 실상 표현
영원한 성장 없고 성장이 해법 아니

성장주의 넘어 제주에 모델인 ‘부탄’
국민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 우선
자연·문화 보전하며 관광 영위

이번 추석에는 슈퍼문이 떴다. 달이 평소 지구와의 거리인 약 38만㎞보다 2만3000㎞ 정도 가까워져 약 14% 더 크고 밝게 보인 것이다. 그래서 그 풍성해진 달의 느낌을 담아 대한 인사말로 ‘풍성한 한가위’를 사용했다.

나이 50에 안정된 생활에 접어들었단 생각에 ‘풍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지만, 명절 차례상 앞에서 취업준비생의 길을 걷고 있는 조카들에게 내가 꺼낼 수 있는 말은 더 이상 없었다. “열심히 해,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반드시 오는 거야” 조언한답시고 해주던 말이 주책이었음을 알게 된 것도 벌써 몇 년은 된 듯하다. 실낱같은 희망만 바라보고 사는 그 고통을 이제는 이해하기에 “힘들지? 힘내!”라는 말조차도 건네지 못한다. 눈빛으로나 안타까운 맘을 전할 뿐.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3포세대’라는 말은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멈추고 채용이 멈추면서 우리 청년들이 고통 받고 있는 실상을 잘 나타내 주는 것 같다. 그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5포세대(‘3포’+취업·주택 포기), 7포세대(‘5포’+인간관계·희망 포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헬조선’과 같은 듣기 거북한 용어까지 나왔다. 영어인 ‘헬’(Hell=지옥)과 신분의 대물림과 탈피할 수 없는 조선시대 상황과 다를 바 없다는 자조적이고 극단적인 표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제가 회복되면 다 풀릴 것이라며 낙관적으로 여긴다. 청년들 또한 성장 속에서 생계안정을 이룩한 부모님 덕분에 오랫동안 취업준비생으로 지내도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무한 긍정주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미국의 사회비평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저서 ‘긍정의 배신’을 통해 자유시장경제의 신념 체계로 굳어진 ‘긍정주의’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비판의식과 불평을 잠재운 결과라고 지적한다. 당신이 취업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하는 것이 우리가 몰랐던 긍정의 이면이다.

긍정주의의 부작용은 현실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각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가리게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부모세대에 누렸던 고성장이 다시 오기는 어렵다. 또한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을 2만5000달러로 끌어올렸다지만 상위1%의 급여소득자에나 해당되는 ‘숫자’일 뿐 대다수국민에게는 상대적 빈곤감만 크다. 영원한 성장은 있을 수 없으며 성장이 결코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성장위주의 해법을 넘어 제주가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가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 달러에 못 미쳐도 국민행복지수 1위인 나라, ‘국민총생산’(GNP:Gross National Product)보다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을 더 중시하는 나라, 모든 교육과 의료가 무상인 나라, 바로 부탄이다. 제주처럼 관광으로 먹고 사는데 인구도 60만으로 제주와 비슷하다.

부탄은 독특한 자연과 그들의 문화가 중요한 관광자원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한 푼의 외화가 아쉬워도 나무를 잘라 팔지 않고 숲을 보호하여 전국토의 51%를 생태 보호지역으로 관리하고, 호랑이 개체 수를 늘리는 등 동식물의 다양성을 잘 보전하고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에 힘쓴다.

우리 제주의 가장 큰 자산 또한 자연이고 전통문화다. 제주가 집중해야할 정책은 자명하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자연을 지키고 가꾸는데, 제주다움을 지키는데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예산이 집중돼야 한다.

제주에 오면 대한민국의 전통문화 예술을 보고 갈 수 있도록 그 기반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제주의 교육은 제주의 가치를 살려 그 경쟁력을 키우고 전통문화예술을 먹거리로 만들 수 있는 제주형 인재양성으로 전환돼야 한다. 공교육에 대한 인식 또한 대입경쟁력이 아니라 제주에 살며 제주를 발전시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우선돼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