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 수·책상 배열까지 기록한 ‘취업 족보’ 가진 학교

고졸취업 전성시대<1>삼일상고의 사례

2015-09-29     문정임 기자

'대학생'이란 이름표가 흔해지면서 취업에서 대학 졸업생을 우대하던 풍토도 희미해졌다. 펄펄 끓는 청춘을 자기소개서 작성에 바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남들보다 더 빨리 목표와 꿈을 설정해 20대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는 '특성화고'의 성공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더불어 커지고 있다.<편집자주>

▲ 대학 꺾이고 취업 떠오르고
대한민국 대학 진학률은 1990년 33%에서 2008년 84%로 정점을 찍었다(교육통계서비스). 2018년에는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생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교육부). 이미 학생 10명중 8.5명이 대학생인데 3년 후에는 대학생이 더 많아져 ‘아무나’ 대학생이 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고등교육이 폭발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수 천 만원을 들여 대학을 가고 다시 취업을 위해 연수와 인턴 경험, 각종 자격증을 따는데 그저 모두의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는 결과만 낳았다. 이렇게 대학 졸업자에 대한 우대가 적어지자 2008년 정점을 찍었던 대학진학률은 2009년 81.9%, 2010년 79%, 2011년에는 72.5% 등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 시기, 서울 지역에서도 대학 진학을 선택한 학생이 대폭 줄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4일 발간한 ‘2015 간편한 서울교육통계’를 보면, 2005학년도의 대학진학률은 71%였지만 2015학년도에는 56.4%로 낮아졌다. 반면 고졸 취업률은 2013학년도 18.8%에서 2014학년도 21%, 2015학년도 21.6%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도 ‘고졸 취업’ 기조를 강조, 지원을 대폭 확대하면서 최근 교육계에서는 ‘특성화고’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 제주에도 피어나는 ‘고졸취업’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지난 22일 제주도교육청이 주최한 ‘취업마인드 제고 연수’에서는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강연장을 떠나는 사람이 없었다.

이날 교육은 특성화고 교사(도내 30개 고교 중 10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고졸 취업을 권장한다면서도 여전히 일고냐 오고냐, 여고냐 아니냐를 따지며 ‘인문계 신화’를 고집하는 제주지역에서 특성화고는 정체성이 모호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런 제주지역 특성화고 교사들에게, 이날 강연을 통해 접한 삼일상고 교사들의 열혈 취업 성공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 삼일상고의 열정
경기 수원에 위치한 삼일상고(국내 유일의 기업자원관리·비즈니스 특성화고, 1903년 개교)는 전통적으로 상업계열 고등학교였다. 대학 진학 열기에 밀려 한 때 진학이냐 취업이냐 정체성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특성화고의 방향은 원래 ‘취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12년부터는 진학 반도 없앴다. ‘선(先)취업을 넘어 선(善)취업으로’를 모토로 내걸었다. 취업률 통계를 위한 입사가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생활의 안정과 꿈을 찾을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질 좋은 취업’에 방점을 찍었다.

삼일상고는 특성화고에 주어진 특례를 잘 활용하고 있다. 대입 수시의 ‘재직자 특별전형’(특성화고 졸업 후 3년 근무하면 지원 가능)이 대표적이다. 인문계고를 나와 전문대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하면 26세를 기준으로 ‘2년제 졸 + 경력 5년’ ‘4년제 졸 + 경력 3년’이지만, 특성화고를 나와 취업 후 4년제 대학을 나오면 ‘4년제 졸 + 경력 7년’이라는 이력을 갖게 된다.

50%대의 내신 성적으로 제약회사에 입사 한 후 3년간 근무하고 한양대 세무회계학과에 입학한 임 양, 역시 중위권의 성적으로 병원에 입사한 후 단국대에 입사한 김 양 등 실제 삼일상고에는 이 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사례가 많다.

삼일상고 교사들은 양질의 취업처를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교사들이 1400장의 학교 홍보지를 한장한장 주변 회사에 돌린 적도 있다. 그리고 4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겨울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적은 수지만 4곳씩 10년이면 40곳이다. 현재 삼일상고가 산학협력 협약을 맺은 기관은 100여곳이 넘는다.

삼일상고는 일반 회사에서 취업처 의뢰가 들어오면 학교 직원이 기업체를 방문해 학생들이 근무하기 좋은 곳인지 확인 후 취업을 내보낸다. 학교가 양질의 취업처를 선별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육부가 4대보험 가입 현황으로 파악하는 취업률(졸업 후 4월1일 기준으로 취업 여부 파악)이 4년 연속(2010~2014) 경기지역 1위였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삼일상고는 ‘취업 족보 관리’에도 공을 들안다. 시험 문제, 면접 후기 심지어 면접관 수와 책상 배열까지 기록하도록 한다. 이 자료는 교사가 아니라 학교가 관리해 누적, 활용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올해 떨어진 선배의 기록은 내년 후배의 소중한 취업 준비 노트가 된다.

교사들은 면접시 학생들의 복장과 언행, 발걸음, 구두, 인사예절까지 교육시킨다. 이력서에 붙일 증명사진 사전 점검은 필수, 반복되는 교정은 예사다.

삼일상고 취업지도의 또다른 철학은 ‘지지하고 격려하는' 문화에 있다. 학부모와 교사가 함께 실습 업체를 방문해 근무환경을 확인하고 격려한다. 취업생에게는 회사로 학교 명의의 간식박스를 보내 근무 중 자존감을 높이고, 첫 출근 날 응원의 전화를 건네기, 출근 1주일째에 기념 밥 사주기 등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취업 후 다시 배움의 길로 돌아오는 ‘복교생’을 줄이기 위해 학생 개개인의 삶의 여건과 계획, 꿈과 적성을 파악한 후 생애설계를 바탕으로 진로교육을 벌이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학부모 상담이 동반된 복교생 자존감 향상 프로젝트도 구비돼 있다. 이 학교의 복교생 재취업률은 2011년 22%에서 2013년 87%까지 급상승했다.

이렇게 학교의 깊은 관심과 지원을 받아 사회에 안착한 졸업생들은 학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 한다. 급기야 선배 멘토단 ‘마중물’이 결성되기도 했다. 매년 5월 1일(노동절날 학교는 등교, 직장은 휴일이므로)을 ‘멘토데이’로 삼아 후배들에게 취업에 대한 조언과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합쳐져 삼일상고는 2010년부터 경기지역 상업계 특성화고 취업률 최우수학교, 2010~2014 5년연속 교육부 취업역량강화사업 최우수 운영학교로 지정됐다.

이날 강연을 맡은 장재환 삼일상고 교사는 “아이들은 정보를 잘 몰라서 손쉬운 방법으로서 대학을 선택한다"며 "중요한 것은 취업이든 진학이든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을 학교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가는 데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치 지향적 취업지도는 취업률 30%가 한계이고 다음해 2월이면 또다시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며 "공감하고 이해하는 지원과 응원을 학생들에게 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무엇보다 학교가 학생 취업지도에 열의를 갖기 위해서는 특성화고의 정체성이 ‘취업’이라는 데 공감하는 교사들이 학교 안에 많아야 한다”며 명확한 방향타 설정이 특성화고 살리기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