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제한속도를 낮춰야 한다

2015-09-06     강동수

유럽 시속 50㎞ 국제표준 인식
자동차 느릴수록 조용·안전·청정
차속 10% 낮추면 사망 30% 감소

제주 과속사고 치사율 전국 최고
위험구간 속도제한 확대 바람직
홍보와 단속 강화도 필요


영국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1801년 영국의 젊은 광산 기술자였던 리차드 트레비딕이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승용차를 최초로 발명하며 관련 산업이 가장 앞서나갔다. 그러나 영국은 승용차 발명국의 프리미엄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독일·미국 등에 선두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속도제한 규정이었다. 당시 영국은 자동차 최고속도가 시속 6.4㎞에 시가지에서는 3.2㎞에 불과했다. 그래서 자동차가 걷는 속도보다 느리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동차를 외면해 버렸다.

현재 유럽 대부분 국가의 도시지역 도로에 대한 제한속도는 시속 50㎞로 통일돼 있다. 일부 동유럽 국가가 시속 60㎞로 돼 있긴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지역 도로 제한속도 50㎞는 국제표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부 교통선진국에서는 시속 50㎞는 환경오염을 줄이는 효과가 크지 않다며 그 이하로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자동차가 느리면 느릴수록 조용하고 안전하며 청정해지기 때문이다. 시속 30㎞일 경우 시속 50㎞일 때보다 교통소음은 3∼4 ㏈ 감소하고 사망사고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동차 배기가스의 70∼80%가 주간선도로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므로 도시지역 도로의 제한속도를 낮출수록 오염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교통사고의 위험도는 속도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2010년 5월 유럽교통안전위원회는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 모든 차량의 주행속도를 1% 줄이면 사망사고를 4% 감축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교통전문가들은 도시지역 도로의 평균차속을 강제적으로라도10% 낮추면 사망사고는 30%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 도시지역의 현행 제한속도인 시속 60~80㎞를 모두 시속 50㎞ 이내로 제한할 경우에는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30∼50% 줄일 수도 있다는 결과를 유추해낼 수 있다.

실제로 인천지방경찰청은 2014년 4월부터 인천시내 주요 도로 34개 노선, 231㎞ 구간에 제한속도를 시속 10~20㎞ 낮춘 결과 이후 4개월간 교통사고는 모두 832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8.4% 줄었다고 한다. 이 기간 사망자는 7명으로 50%, 부상자는 1322명으로 20.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울산지방경찰청도 주요 도로의 제한속도를 시속 10㎞씩 낮춘 결과 교통사고는 27.2%, 인명피해는 34.3%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5년간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 치사율이 제주도가 전국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그동안 제주도가 제한속도를 지속적으로 낮추고 단속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예방활동을 강화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의외다.

관광객들은 제주도의 제한속도 설정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을 많이 한다. 도로는 잘 뚫려 있으면서도 제한속도가 수시로 변해 본의 아니게 위반하게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속도를 더 낮춘다면 주요 도로의 지·정체가 가중될 우려가 있고 관광객들이 렌터카 이용을 회피하는 등 관광산업이 위축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사상자 줄이고 그 감소추세를 지속하려면 속도제한 구간을 더 확대해야 한다. 자동차가 얼마의 속도로 주행하고 있는가는 생명과 직접 관계되는 문제이다.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사고감소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거의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 한다. 속도를 낮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속으로 인한 치사율이 높다는 것은 운전자가 제한속도를 잘 인지하지 못했거나 관광지 기분에 들떠서 제한속도를 무시하고 운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도로교통법에는 차로수(車路數)에 따라 제한속도를 달리하고 있지만 교통여건에 따라 지방경찰청장이 하향 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제주지방경찰청은 사고위험도가 높은 구간 등에 속도제한 구간을 순차적으로 확대하는 노력과 함께 편차가 큰 제한속도 구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또한 운전자들이 이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홍보와 단속활동을 강화하는 노력도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