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충돌에서 본 2가지 희망
북한 22일 오후5시 ‘최후통첩’
우리도 ‘경거망동 강력 응징’ 경고
남북 고위급 접촉으로 극적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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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상황 회피 양측 의지 확인
‘전우와 함께’ 장한 우리 젊은이들
국가가 그들을 위해 나서야할 때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마치 한반도에서 운명의 시계가 전쟁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북한이 우리에게 비무장지대(DMZ)에서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힌 ‘최후통첩’ 시한인 지난 22일 오후 5시를 전후한 상황이다.
8월4일 DMZ에서 북한이 매설한 목함지뢰 폭발사고로 촉발된 남·북간 긴장상태는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었다. 우리가 지뢰도발 보복조치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8월20일 북한이 DMZ 남방한계선 너머 등으로 포탄을 발사하고 우리 군도 즉각 대응사격하며 ‘맞불’을 놨다. 북한은 이날 오후 5시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48시간 이내(22일 오후5시) 대북심리전 방송 중지 등의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우리는 21일 오전 한미 군연합작전체제를 가동하면서 북에 전통문을 발송, “경거망동시 강력 응징”을 경고하고 나섰다. 서해5도에서 강원도 동부까지 접경지역 주민 대피령까지 내려지며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운명의 시계를 초조하게 지켜보던 22일 오후3시 낭보가 들렸다. 오후6시 판문점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전격 합의된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까지 10시간 가까운 마라톤협상에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23일 오후 시작된 2차 접촉도 24일 낮은 물론 자정을 넘기는 ‘울트라 마라톤’ 협상으로 이어지자 비관론과 낙관론이 교차했다.
비관론은 양측의 이견이 심해 합의점을 도출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우려의 끝은 무력 충돌이었다. 북한은 남북간 잠수함 수십척을 기지에서 이탈시키고 특수부대를 전진 배치하는 모습이 포착돼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낙관론의 근거는 판을 깨지 않으려는 양측의 의지다. 그 오랜 시간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는 것은 극단적 충돌을 막기 위한 합의점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결국 낙관론이 맞았다. 2차 접촉 33시간여 만인 25일 새벽 12시55분 해결책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최소한 2가지의 희망을 봤다. 일단 ‘치킨게임(chicken game)’에서 보여준 남과 북의 이성적인 모습이다.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이 담력을 겨루기 위해 두 사람이 도로 맞은편에서 서로를 향해 자동차로 돌진하던 치킨게임처럼 남과 북도 마주했었다. 많은 친구들이 지켜보는 치킨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선 최악의 결과를 감수하고 무조건 직진해야 하는 것처럼 이번도 비슷했다. 자국의 국민들에게 ‘승리’를 공언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먼저 “아! 죄송”하며 물러날 수는 결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차선이 최선이었다. 치킨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은 정면충돌이다. 이 경우 둘 다 승자가 되지만 진정한 승자가 아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체제의 자존심도 중요했지만 국민들의 안위를 우선했다. 그래서 서로 자리를 같이하고 울트라 마라톤협상을 마다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핸들을 돌려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둘이 동시에 핸들을 돌린 셈이다. 치킨게임의 무승부다. 이긴 쪽도 없지만 진 쪽도 없다. 그러나 모두 승자다. 한민족 국민들이 목숨을 잃는 허망한 승리보다 모두가 상생하는 무승부가 사실상의 승리다.
또 하나의 희망은 우리의 젊은이들이다. 북한군의 전투태세 등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많은 병사들이 “전우를 두고 떠날 수 없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전역을 연기했다. 유사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음에도 속속 부대로 복귀한 휴가병들, 전투복과 전투화를 찍은 사진과 함께 “조국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글을 SNS에 올린 예비역들. 정말 고마운 젊은이들이다.
이제 국가가 할 일만 남았다. 이들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제대로 일하며 희망을 키워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연애와 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에다 심지어 희망과 꿈까지 포기한 ‘7포 세대’라는 자조가 이들의 입에서 더 이상 나와선 안될 일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협상결과를 자화자찬만할 게 아니라 그게 가능하도록 목숨을 담보로 국가에 충성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그게 국가의 도리이고 권리다. 조국의 가치를 아는 젊은이들을 챙겨줄 수 있는 국가의 아름다운 권리를 적극 행사할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