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영향 대규모 정전 사태 속 발생

‘태완이법’ 시행···제주 미제사건 프로파일
<4>2007년 동홍동 40대 주부 피살사건

2015-08-24     김동은 기자

“당시 태풍 ‘나리’의 영향으로 서귀포시 일대에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 단서가 나오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도내 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인 40대 주부 피살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서귀포경찰서 형사는 사건에 대한 소회를 이 같이 밝혔다.

2007년 9월 16일 제11호 태풍 ‘나리’가 제주를 강타, 강풍과 함께 엄청난 물폭탄을 쏟아내면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남겼다.

그리고 그날 오후 11시 55분. 서귀포시 동홍동 모 식당 앞 골목길에서 주부 주모(당시 42세·여)씨가 흉기에 수차례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나리’가 제주를 강타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사건 발생 한 시간 전인 오후 11시께 동거남과 함께 차를 타고 귀가하던 주씨는 마트에 다녀오겠다며 홀로 동문로터리에서 내렸다.

인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던 주씨는 복부 등 4곳을 누군가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길바닥에 쓰러진채로 발견됐다. 집에서 불과 5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발견 당시 주씨의 옷은 벗겨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주씨가 들고 있었던 가방은 현장에 없었다. 빵과 우유 등이 담긴 비닐봉투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범인은 현장에 범행 도구는 물론 지문과 족적 등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서귀포경찰서는 현장 감식을 벌였으나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더욱이 이날은 야속하게도 태풍 ‘나리’가 제주를 관통한 날이었다. 이로 인해 서귀포시 도심 전체가 정전으로 암흑 속에 빠지면서 경찰 수사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사건 발생 시간대에 주요 도로를 주행한 차량을 조회하려 했지만 정전으로 인해 과속 단속 카메라는 물론 교통 정보 수집기가 작동을 멈춰버렸다.

경찰은 주변 인물은 물론 태풍의 영향으로 어선들이 항·포구에 긴급 피항해 있었던 만큼 선원 등을 조사했지만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사건 현장에서 20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한 남성이 뛰어가는 것을 목격한 학생의 증언을 바탕으로 용의자의 몽타주를 작성하고 수배에 나섰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경찰 수사는 더는 진전되지 않았고,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면서 8년째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당시 상황과 경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흉기에 4차례나 찔린 점으로 볼 때 원한 관계에 의한 면식범의 소행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가방이 사라진 점으로 미뤄 금품을 노린 단순 강도가 살인으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40대 주부 피살사건의 공소시효도 사라졌다. 언제든지 수사를 재개해 범인을 잡기만 하면 법정에 세워 죗값을 치를 수 있게 된 셈이다.

당시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서귀포경찰서 형사는 “어두컴컴한 시간대에 사건이 발생해 뚜렷한 목격자도 없었다”며 “범인을 잡을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아 형사로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건”이라고 말했다.